
[스포츠춘추]
미국 프로야구(MLB)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지난해 KBO리그가 사상 처음으로 폭염 취소를 경험한 데 이어, MLB도 더위와 자연재해로 인한 경기 취소가 잇따르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야외에서 장기간 진행되는 프로스포츠 중 가장 기후변화에 취약한 MLB의 고민을 미국 고급지 디 애틀랜틱이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달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밀턴으로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가 큰 피해를 입었다. 강풍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테플론 코팅 유리섬유 지붕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대부분 뜯겨나갔다. 엘렌 커싱 디 애틀랜틱 기자는 "플로리다의 폭염을 견디기 위해 설치된 지붕마저 허리케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고 전했다.
MLB는 4대 프로스포츠 중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하다. 3월부터 10월까지 대부분 야외에서 치러지는 장기 시즌 특성상 폭염과 자연재해의 영향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1869년 첫 프로야구단이 창설됐을 당시 뉴욕 센트럴파크의 7월 평균기온은 섭씨 22.7도였으나 2023년엔 26.1도까지 상승했다. 최근 전망에 따르면 2100년엔 최대 7.5도가 더 상승할 수 있다.
이미 기후변화는 야구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6월 캔자스시티 로열스 홈경기에선 관중 4명이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4시즌 전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선발투수 딜런 번디가 마운드 뒤에서 구토를 하며 열사병으로 강판되는 일도 있었다. 서부 해안에선 산불 연기로 경기가 연기되기도 했고, 뉴욕에선 폭우로 경기가 지연되는 일도 잦아졌다.
KBO리그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지난 8월 울산 문수구장에서는 리그 42년 역사상 처음으로 폭염으로 인한 경기 취소가 발생했다. 이틀 뒤에는 잠실구장 경기까지 취소되며 하루 2경기가 폭염으로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KBO는 8월 주말 낮경기 시간을 오후 6시로 늦추는 긴급 조치를 취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제시카 머프리 교수는 "기후변화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스포츠가 가장 먼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1년 한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더위는 심판의 판정 실수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온도 상승으로 인한 공기밀도 감소가 타구의 비거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현재 MLB 30개 구단 중 8개 구단이 지붕이 있는 돔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지어진 3개 구장 중 2개(마이애미, 댈러스)가 지붕을 갖췄고, 라스베이거스에 새로 건설될 구장도 실내구장이 될 예정이다. 대부분 개폐식 지붕이지만 여름철엔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 구단은 임시방편으로 물안개 분무기와 대형 얼음물 통을 설치해 더위를 견디고 있지만, 이는 야구장을 '휴식의 공간'이 아닌 '생존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UC버클리의 알바 노에 철학교수는 "실내구장에선 새와 구름, 햇살, 바람 같은 야구의 자연스러운 요소들을 느낄 수 없다"며 "쇼핑몰에서 야구를 보는 것 같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보스턴, 시카고 등 100년이 넘은 전통의 야구장을 보유한 도시에선 지붕 설치에 대한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내구장이 현재로선 최선의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플로리다주립대 티모시 켈리슨 교수는 "수십억 달러가 드는 구장 신축이나 리모델링이 쉽지 않지만, MLB와 구단들은 팬들을 지키기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스포츠경영컨설턴트 에일린 맥매나몬은 "MLB도 기후변화가 생존에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오레곤대 브래드 윌킨스 교수는 열 발산이 잘되는 새로운 유니폼 도입을, 맥매나몬은 자연 환기가 잘되는 부지 선정과 시즌 단축을 제안했다. 머프리 교수는 날씨에 따라 경기 일정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 애틀랜틱의 커싱 기자는 "야구는 계속 변화해왔다. 인종통합, 야간경기, FA제도, 지명타자, 비디오판독 등 모든 변화는 처음엔 반발을 샀지만 결국 수용됐다"며 "이제 야구는 가장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로서의 정체성을 잃더라도 생존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단순히 야구계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켈리슨 교수는 "MLB의 사례는 기후변화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라며 "스포츠를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