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바람의 손자' 이정후(26)가 메이저리그 2년차 시즌에서 확실한 도약을 이루며 미국 현지의 주목을 받고 있다. 5월 2일(한국시간)까지 타율 .316, OPS .893을 기록 중인 이정후는 내셔널리그 2루타 부문에서도 11개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힘과 속도가 아닌 '타이밍'을 극대화한 그만의 독창적 타격 폼이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다.
MLB.com의 데이비드 애들러 기자는 3일 기사에서 "이정후의 타격 과정은 마치 정교하게 짜인 군대식 절차와 같다"고 소개했다. 현지에서 보는 이정후의 폼은 독특하다. 타석에 서면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앞발을 크게 열어 준비 자세를 취한 후, 투수 동작이 시작되면 발을 딛고 멈추며 몸에 힘을 축적한다. 이어 공이 투구될 때 발을 내디디며 그 에너지를 폭발시켜 스윙으로 연결한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 핵심이다. 투수가 어떤 구종을 던지든 타이밍만 맞으면 배트의 정확한 부분으로 공을 맞힐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드문 이 타격 폼은 전설적인 아버지 이종범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바람의 아들'의 아들로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타격 폼만큼은 이정후 자신만의 창작품이다. "아버지는 야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특별히 가르쳐주신 적이 없다. 우리 둘은 타격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다."
이정후는 휘문고 시절부터 KBO리그에서 보낸 7시즌, 특히 2022년 MVP 시즌까지 변함없이 이 독창적 타격 폼을 고수해왔다. 아마추어 시절 모든 타격코치들이 이 복잡한 타격 폼을 단순화하라고 조언했지만, 이정후는 자신만의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이정후는 KBO 통산 타율 .340의 기록을 남겼다.
이정후의 타격 폼에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타석에서 1루 방향으로 41도나 발을 벌린 채 시작하는 오픈 스탠스는 MLB 좌타자 중 5번째로 극단적이다. 지난해보다 더 과감하게 벌린 이 자세는 다양한 구종과 투구 폼을 가진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더 잘 보기 위한 전략이다.
이 스탠스에서 투구 타이밍에 맞춰 앞발을 다시 안쪽으로 당겨 20도 정도로 좁힌 후 스윙을 완성하는 과정은 마치 정교한 시계 태엽이 풀리는 것과 같은 정밀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이정후는 우타 투수에겐 타율 .304, 좌타 투수에겐 타율 .342로 투수 유형을 가리지 않는 균형 잡힌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에는 변화된 타석 접근법도 선보이고 있다.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으로 초구 스윙 비율이 17%에서 26%로 대폭 상승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경험을 통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초구부터 승부를 걸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는 그들보다 한발 앞서 공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적극적인 공략에도 특유의 타격 정확성은 여전하다. 이정후의 헛스윙 비율은 MLB 상위 3%인 13% 미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정타율(스위트 스팟에 공이 정확히 맞는 비율)도 MLB 상위 6%인 35%를 기록 중이다. 이정후의 기대 타율이 .308로 리그 상위권인 이유다.
이정후는 어퍼 스윙을 구사하면서도, 홈런 아니면 삼진 식의 극단적 결과물에 치중하는 현대 메이저리그 트렌드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이정후의 특기는 오히려 강력한 라인드라이브 타구다. MLB 규정타석 타자 중 상위 25위권인 31%의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홈런 타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다. 그래서 항상 라인드라이브를 목표로 삼았다. 이제는 그것이 몸에 완전히 베어 있다"고 밝혔다.
빅리그에서의 첫해 겪었던 부상의 아픔을 딛고 돌아온 이정후. 그의 독창적인 타격 폼과 타이밍의 예술은 이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바람의 손자'의 타격폼을 앞으로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큰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