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34년 만에 MLB 영구 제명이 철회된 '안타왕' 피트 로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을 두고 미국 야구계 레전드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투표권을 가진 미디어 종사자들 중에선 금지약물 선수들 사례와 비교하며 비판적인 목소리도 만만찮다. 논란이 시작된 가운데, 이미 사망한 로즈가 쿠퍼스타운에 들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MLB 사무국이 지난 5월 14일(한국시간) 로즈를 비롯한 17명의 사망 선수들에 대한 영구 제명 조치를 철회한 가운데,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현역 시절 로즈와 함께 뛰었거나 상대했던 12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15일 공개했다.
역대 최다 안타(4,256개)와 최다 경기 출전(3,562경기) 기록을 보유한 로즈는 1989년 선수 겸 감독 시절 자신의 팀 경기에 불법 스포츠 베팅을 한 혐의로 MLB에서 영구 제명됐다. 사실상 살아서 명예의 전당 입성이 불가능해진 로즈는 지난해 10월 83세로 사망했다.
디 애슬레틱이 조사한 12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중 대다수는 로즈의 입성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레지 잭슨(1993년 입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로즈는 입성해야 한다. 스테로이드 사용자들도 이미 명예의 전당에 있다"며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로즈와 함께 '빅 레드 머신'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토니 페레즈(2000년 입성)는 "로즈가 경기장에서 한 일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그는 오랫동안 대가를 치렀고, 야구를 정말 사랑했다"고 오랜 동료를 지지했다.
지난해 10월 로즈가 사망하기 하루 전 함께 있었다는 안드레 도슨(2010년 입성)은 "살아있을 때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며 "그의 기록은 이미 오래전에 인정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존 스몰츠(2015년 입성)도 "위원회에 있다면 나는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며 "명예의 전당에는 이미 중범죄자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톰 시버와 함께 활약했고 밥 깁슨, 루 브록 등과 교류가 깊었던 토니 라루사(2014년 입성) 감독은 "로즈의 기록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시버, 뮤지얼, 깁슨 같은 레전드 선수들은 그의 행동에 매우 화가 났었다"며 "로즈는 잘못했고, 오랫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게 되자 그제서야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로즈의 동료였던 마이크 슈미트(1995년 입성)는 "투표가 진행된다면 50대50으로 나뉠 것"이라며 "생전에 로즈는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지만, 동시에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통계와 커리어만 놓고 본다면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수 출신들은 대체로 로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우호적인 의견을 밝힌 반면, 투표권을 가진 언론계에선 다른 의견도 나온다. 디 애슬레틱의 켄 로젠탈 기자는 로즈의 사례가 금지약물 사용자들의 사례와 비교해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로젠탈은 "BBWAA 투표자들은 확실한 금지약물 위반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매니 라미레즈에게 더 엄격했고, 약물 검사 도입 이전 활동했던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도 기록은 명예의 전당 수준이지만 입성시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로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지지하는 측은 '경기 성적만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논리는 지금까지 BBWAA 투표자들이나 2022년 본즈와 클레멘스를 평가한 위원회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로젠탈 기자는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로즈의 영구 제명을 철회한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로젠탈은 트럼프 대통령과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지난 4월 17일 백악관에서 만났으며, 맨프레드가 로즈가 논의 주제였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로젠탈은 "맨프레드의 입장 번복이 보여주듯, 강한 의지를 가진 대통령 아래서는 어떤 원칙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트럼프는 본즈나 클레멘스가 아닌 로즈만 특별히 옹호했다"고 덧붙였다.
도박 문제 외에도 로즈는 1970년대 16세 미만 소녀와의 성관계 의혹과 1990년 탈세로 인한 5개월 징역형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로젠탈은 "약물 문제와 마찬가지로 로즈의 문제도 성적과 인격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며 "명예의 전당 지침은 '선수의 기록, 플레이 능력, 정직성, 스포츠맨십, 팀 기여도'를 기준으로 선정하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즈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려면 두 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는 BBWAA(야구기자협회)가 임명하고 이사회가 승인한 역사개요위원회, 두 번째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 임원, 베테랑 미디어로 구성된 16인의 시대위원회다. 로즈는 1980년 이전 활약한 선수를 평가하는 '고전 야구 시대' 분류를 받아 2027년 12월에 평가받을 예정이다. 16명 중 12표 이상을 획득해야 2028년 여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다.
로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둘러싼 논란은 야구의 근본적인 가치와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현재 MLB는 스포츠 도박 산업과 다각적인 제휴를 맺고 있어, 도박 문제로 선수를 영구 제명하는 과거 원칙과 상충한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에는 도박 광고가 넘쳐나고, 각종 중계에서도 베팅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에서 로즈의 사례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사망한 로즈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면 살아있을 때 불가능했던 일을 죽음으로 이룬 아이러니한 결과가 될 것이다. 생전에 로즈는 "명예의 전당은 내가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땅속에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했다. 그가 사망한 지 3년이 되는 2027년 12월, 쿠퍼스타운의 문은 열릴 것인가. 야구계의 뜨거운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