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첼시가 유럽축구연맹(UEFA) 주관 5개 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역사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첼시는 5월 29일(한국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 스타디온에서 열린 2024-25 UEFA 컨퍼런스리그 결승에서 레알 베티스를 4대 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번 우승으로 첼시는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컨퍼런스리그, UEFA 슈퍼컵, 그리고 폐지된 컵위너스컵까지 UEFA 주관 5개 대회를 모두 정복한 최초의 클럽이 됐다. 특히 2022년 토드 볼리-클리어레이크 컨소시엄이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따낸 트로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기는 베티스의 일방적인 주도로 시작됐다. 9분 말로 구스토의 패스 미스를 파블로 포르날스가 가로채면서 베티스의 첫 골이 나왔다. 이스코가 절묘한 스루패스를 보내자 압데 에잘줄리가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베티스는 계속해서 첼시를 압박했다. 33세의 베테랑 이스코가 중원에서 완전히 경기를 장악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5차례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경험과 기량이 빛을 발했다. 에잘줄리 역시 우측 측면에서 구스토를 번번이 제치며 위협적인 공격을 이어갔다.
첼시는 전반 내내 베티스의 조직적인 압박에 속수무책이었다. 엔초 마레스카 감독이 시도한 구스토의 역전된 풀백 역할은 완전히 실패했고, 빌드업 과정에서 연신 실수가 나왔다. 전반 종료 직전까지도 베티스가 추가 골을 넣을 뻔한 상황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마레스카 감독은 하프타임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부진했던 구스토를 빼고 주장 리스 제임스를 투입한 것이다. 이 교체는 즉시 효과를 발했다. 첼시는 우측 측면에서 안정감을 되찾았고, 볼 점유율도 서서히 높아졌다.
65분, 침묵을 지키던 첼시의 에이스가 마침내 움직였다. 콜 팔머가 우측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띄우자 엔초 페르난데스가 완벽한 헤더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작년 12월 이후 내내 부진했던 팔머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한 것이다.
5분 뒤 팔머는 또다시 마법을 부렸다. 우측에서 공을 받은 그는 헤수스 로드리게스를 제치고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다. 니콜라스 잭슨이 가슴으로 받아 골을 넣으며 첼시가 역전에 성공했다. 단 5분 만에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팔머의 클래스가 돋보였다.
전반 완벽했던 이스코는 후반 들어 체력적 한계를 드러냈다. 베티스 전체가 첼시의 빨라진 템포를 따라가지 못했고, 조직력도 점차 흐트러졌다. 반면 첼시의 젊은 선수들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더 강해졌다.
83분 첼시가 쐐기골을 터뜨렸다. 키어넌 듀스버리홀의 패스를 받은 제이든 산초가 안쪽으로 파고들어 오른발 컬링슛으로 골을 넣었다. 추가시간에는 모이세스 카이세도까지 골을 보태며 4대 1 대승을 완성했다.
첼시의 이번 우승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트로피 획득을 넘어선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인 첼시에게 이번 우승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26세인 마르크 쿠쿠레야가 선발 11명 중 최고령일 정도로 젊은 팀이었지만, 이들은 큰 무대에서 압박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마레스카 감독은 경기 후 "이번 우승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오늘부터 다음 시즌을 위한 중요한 기반을 다져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첼시는 이번 우승으로 내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함께 손에 넣었다.
전 첼시 미드필더 조 콜은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를 폄하하지만, 선수들과 스태프, 팬들의 환한 미소를 보라"며 "바로 이것이 축구가 주는 진짜 기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리버풀(프리미어리그), 크리스털 팰리스(FA컵), 뉴캐슬(EFL컵), 토트넘(유로파리그), 첼시(컨퍼런스리그)가 모두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영국 축구의 저력을 과시했다. 한 시즌에 5개 클럽이 각각 다른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이다.
첼시는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출전하며 또 다른 트로피에 도전한다. 이번 우승이 13년 만에 다시 찾아온 황금기의 서막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