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골프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사진=AJGA.com)
미국의 골프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사진=AJGA.com)

 

[스포츠춘추]

미국 골프계가 16세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의 등장과 함께 10대 운동선수 보호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나서고 있다. 과거 미셸 위, 렉시 톰슨 등 10대 골프 스타들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조기 은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는 운동선수에게 '운동 기계'가 되길 강요하는 한국 체육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5월 29일(한국시간) "10대 골프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가 급부상하면서 여자 골프계가 그녀를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탤리는 지난 4월 어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에서 1번홀 이글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고, 28일 US여자오픈에 출전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골프계가 우려하는 것은 과거 10대 스타들이 겪었던 부작용들이다. 렉시 톰슨은 지난해 30세의 나이에 부분 은퇴를 선언하며 "12세부터 골퍼로서 끊임없는 관심과 압박, 감시 속에서 살았다. 카메라는 항상 켜져 있고, 소셜미디어는 잠들지 않으며 전 세계에서 비판이 쏟아진다.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하면서 내면의 고통과 씨름하는 것은 지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뉴질랜드 출신 리디아 고는 15세에 LPGA 투어 최연소 우승자가 되고 17세에 세계 1위에 올랐지만, 20대에는 호텔 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존감 하락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16세 때 이미 "30세에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골프 전문 기자 론 시랙은 "여자 골프 선수들에게는 단순히 차세대 스타가 되라는 압박뿐만 아니라 투어의 구세주가 되라는 압박이 가해진다"며 "이는 선수로서 단명과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메이저 대회 1-2승을 따내고 LPGA 10승을 해도 '실망스러운 커리어'라고 평가받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국가 차원의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전 LPGA 선수 헤더 데일리-도노프리오는 "13세부터 강력한 주니어 팀을 만들되, 단순히 15세에 우승하는 선수가 아닌 20-30대에도 행복하고 계속 우승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개인을 기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선수들의 경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진로 전환 과정에서 상담을 제공하며, 선수들끼리 서로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데일리-도노프리오는 "골프는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선수들 간의 연대와 지원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올바른 역할도 중요한 요소다. 프로그램은 부모들에게 "자녀가 이겼을 때 저녁을 사준다면, 경기를 못했을 때도 똑같이 해주라"고 조언한다. 나쁜 샷 후에 실망하는 표정도 짓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은 다 안다. 10대에 대스타가 될 수 있다고 배우는 아이에게는 그런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골프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사진=US OPEN)
미국의 골프 신동 애스터리스크 탤리(사진=US OPEN)

미국의 이런 고민은 어린 운동선수들을 '운동 기계'로 만드는 한국 체육계 현실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체육계는 오랫동안 어린 선수들에게 오직 운동에만 집중하라고 요구해왔다. 운동 외의 모든 것은 '방해 요소'로 치부되고, 학업이나 또래와의 정상적인 교류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 결과 운동을 그만두면 사회에서 '실패자'가 되는 극단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어릴 때 '신동'으로 불린 선수가 학업을 그만두고 운동에만 올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는 선수는 극소수다. 실제로 국내 학생선수 중 프로가 되는 비율은 10%에도 못 미치며, 운동선수 평균 은퇴 나이는 23.6세, 은퇴 후 무직률은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1781명의 학생선수가 운동을 포기했으며, 이유로는 진로 변경이 85%를 차지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운동선수도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학업하고 건전한 10대 생활을 즐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체육계는 "공부하면 운동 실력이 떨어진다"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동 성과만을 기준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문화도 그대로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운동 성과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체계적 지원과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단 제안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어린 나이의 성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건강한 성인이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애스터리스크 탤리는 작년만 해도 "빨리 프로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올해는 "대학에 가고 싶다. 팀 플레이를 좋아하고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바꿨다. 탤리는 여전히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숙제 걱정을 하는 평범한 16세다. 미국 골프계가 그의 이런 '평범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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