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FIFA 수장 인판티노(사진=FIFA 공식 SNS)
역사상 최악의 FIFA 수장 인판티노(사진=FIFA 공식 SNS)

 

[스포츠춘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이민정책이 내년 2026 월드컵 개최에 예상치 못한 파괴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개국에 대한 입국금지령으로 이미 출전권을 확보한 이란을 비롯해 여러 국가 팬들이 관람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영미권 외신들은 6월 10일(한국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이 월드컵 준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 개최로 예정된 이번 대회가 정치적 혼란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 등 12개국에 대한 입국금지령을 발동했다. 이 중 이란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2026 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한 국가다.

입국금지령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나 팀 관계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지만, 팬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는 이란을 비롯한 해당 국가 팬들이 자국 대표팀 경기를 직접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자칫 '강제 무관중'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2026 월드컵 앞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사진=FIFA 공식 SNS)
2026 월드컵 앞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사진=FIFA 공식 SNS)

영국 가디언은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입장권이 비자 역할을 했지만, 2026 대회에서는 비슷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쿠바, 베네수엘라 등 7개국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제한이 적용된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이 월드컵 운영진 구성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FIFA는 통상 올림픽 같은 대형 이벤트 경험이 있는 계약직 전문가들을 고용하는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평소보다 훨씬 어려워졌다"고 축구 관계자가 전했다. 미국 정부가 일부 비자 신청을 거부하면서 "왜 FIFA가 미국인을 고용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는 것이다. 여러 국가의 비자 대기 시간도 내년 여름 토너먼트 시점을 넘어서고 있다.

FIFA 대변인은 업무 비자 취득 과정이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지만, 특정 국가 팬들의 입국 차단 가능성이나 입장권 소지자들의 관람 보장을 위한 FIFA의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축구 최고의 축제 월드컵을 뒤흔드는 트럼프의 정책(사진=알 자지라 방송 화면)
세계 축구 최고의 축제 월드컵을 뒤흔드는 트럼프의 정책(사진=알 자지라 방송 화면)

미국 내 11개 월드컵 개최도시 관계자들은 9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500만 명 이상의 외국인 관람객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하고, 이민단속 반발 시위가 격화되자 주방위군까지 투입되면서 개최도시인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어 개최 준비 자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필라델피아 개최위원회 CEO 메그 케인은 "내년 토너먼트에 영향을 미칠 지정학적 이슈들이 지금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개최위원회 부회장 제이슨 크루치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우리도 대응책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털어놓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스콧 오스틀러는 "입국금지령의 기준이 너무 애매해서 스페인이나 이라크에서 온 관람객들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며 "그냥 비행기 타고 와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관세 폭탄, 입국금지, 동맹국과의 갈등, 국제 정치·경제 혼란이 모두 합쳐져 글로벌 스포츠 무대에서 미국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26 월드컵 우승 트로피(사진=FIFA 공식 SNS)
2026 월드컵 우승 트로피(사진=FIFA 공식 SNS)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는 가운데서도, 주최 측 인사들의 현실감 없는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하는 수준이다. 보스턴 개최위원회 회장 마이크 로인드는 "연방정부와 FIFA가 적절히 대화하고 있다. 우리의 의도는 세계를 환영하는 것"이라며 한가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누구를 들여보낼지는 자신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FIFA 지안니 인판티노 회장 역시 올해 초 "미국이 세계를 환영할 것"이라며 "축구를 즐기고 싶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강경책 앞에서 그 약속은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월드컵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혼란 속에 '모든 이를 환영하는 축제'라는 대회 정신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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