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이 전 소속 선수 토마스 파티의 성폭행 혐의를 3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 감싸며 피해자를 외면한 충격적인 실상이 드러났다. 피해자가 직접 구단에 알렸지만 아스널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영국 검찰청(CPS)은 지난 7월 4일 파티를 2021~2022년 사이 3명 여성 대상 성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파티는 32세 가나 출신 미드필더로, 계약 만료로 6월 30일 아스널을 떠났고 나흘 뒤 기소됐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7월 11일(한국시간) 보도에 따르면, 2021년 9월 토마스 파티의 성폭행 피해자 중 한 명이 아스널에 직접 연락해 "충격적인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아스널이니까 그냥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구단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아스널의 선수보호팀은 그녀를 법무팀으로 넘겼고, 구단은 "아스널은 그녀가 18세 미만이 아니어서 관련 보호 법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답변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 역시 "성인 대상 사건은 우리 관할 밖"이라며 손을 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와의 전화 및 이메일 대화에서 아스널의 고위 인사들이 보인 냉담한 태도다. 구단은 이 문제를 "극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파티를 계속 홍보하고 소셜미디어에 노출시켰다.
경찰이 아스널에 파티가 중대한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고 공식 통보한 이후에도 구단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한 피해자는 "경찰이 구단에 혐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분명히 알렸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아스널 내부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디 애슬레틱이 취재한 구단 일부 직원들은 "실망과 당황감"을 표현했고, 자신들만 이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4월 파티와의 계약 연장 논의 소식이 알려졌을 때 직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아스널의 이중적 행태는 구단의 정체성과도 모순된다. 아스널은 현재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성과 공동체 가치를 내세우는 구단이다. 구단 채용 페이지에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올바른 일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미겔 아르테타 감독은 2022년 10월 파티가 토트넘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 "그가 겪어온 일들과 부상들, 그리고 팀을 위해 이번 주 보여준 노력을 생각하면 정말 기쁘다. 그는 이럴 자격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구단의 고위 직원은 2022년 "우리는 파티를 믿어야 한다. 그는 우리 선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아스널이 파티를 단순히 방관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옹호했음을 보여준다.
아스널의 뻔뻔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는 파티가 경기할 때마다 극심한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팬들이 자주 메시지를 보내왔다. 파티가 경기하거나 골을 넣는 사진을 보내며 살해 위협, 성폭행 위협을 했다. 불태워 죽이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특히 그가 골을 넣으면 괴롭힘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아스널이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온사이드 로의 알렉스 클라크 변호사는 "구단이 선수를 경기에 출전시킬 의무는 없다"며 "파티를 훈련에 참여시키고 급여를 지급하는 한, 경기 출전 없이도 고용 의무를 충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는 벤자민 멘디가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후 2021년 9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무급 출전 정지시켰다. 같은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대응을 보인 것이다.
아스널 팬들의 분노도 거세다. '아스널 성폭력 반대 서포터즈'는 2024년 11월 공개서한을 통해 구단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 서한에는 9000명이 서명했고, 이들은 에미리츠 스타디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리사 난디 영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 주 "거액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성폭행 혐의에 휘말렸을 때 구단마다 제각각 다른 대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기소와 관련해 파티의 변호사 제니 윌트셔는 성명을 통해 "의뢰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드디어 자신의 결백을 밝힐 기회를 갖게 되어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아스널은 "현재 진행 중인 법정 절차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는 단 몇 줄의 성명만 내놨다.
아스널이 법적으로는 문제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토마스 파티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만 오래된 자칭 명문 구단의 민낯에 이제 모든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