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이장석 최대주주(사진=스포츠춘추 DB)
키움 히어로즈 이장석 최대주주(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

영구실격당한 구단주의 딸이 몰래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 키움 히어로즈 구성원들이 느꼈을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마치 그룹 총수의 자녀가 언더커버로 회사에 잠입하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지난 7월 15일 언론 보도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KBO로부터 영구 퇴출 징계를 받은 이장석 키움 히어로즈 전 대표이사의 딸이 구단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차례나. 채용 공고도 없이, 특별 추천을 통해서 말이다.

이장석 전 대표는 2018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기·횡령)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KBO는 "구단 운영에서 불법적 행위로 사적 이익을 취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리그의 도덕성을 훼손했다"며 영구 실격 징계를 내렸다. 어떤 형태로든 구단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장석은 여전히 구단 지분 69.26%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이장석 변호인 출신인 위재민 대표이사가 구단을 이끌고 있고, 과거 '옥중 경영' 의혹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임상수 변호사는 법률자문 자격으로 수시로 구단을 드나든다. 구 측근 고형욱 단장 등은 내쳐졌고 새로운 실세들이 구단 요직을 꿰찼다. 키움을 향한 '그림자 경영'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딸 A씨가 지난해 여름과 올겨울 두 차례에 걸쳐 인턴으로 근무했다. SNS와 유튜브를 담당하며 선수단 가까이에서 일했다. 국외 스프링캠프까지 동행했다. 위재민 대표이사가 직접 추천해서 채용했다고 구단은 밝혔다. 맡은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해명했다. 막상 해당 기간 키움 SNS와 유튜브를 접한 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사진=스포츠춘추)
이장석 전 대표이사(사진=스포츠춘추)

키움 구단 직원들은 "처음에는 구단주 딸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한 키움 관계자는 "나중에서야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이장석 구단주 딸이 맞다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다른 야구 관계자도 "처음엔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만 얘기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물론 구단 경영진과 핵심 실세들은 당연히 A씨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키움 선수 출신 야구인은 "당연히 윗사람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몰랐을 리가 없다"고 했다. 위재민 대표이사가 직접 추천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장석 전 대표의 최측근이 그의 딸인 줄도 모르고 채용을 추천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말단 직원과 선수들은 달랐다. 처음에 그들에게 A씨는 그저 '새로 들어온 대학생 인턴'일 뿐이었다.

A씨는 SNS와 유튜브를 담당하며 선수단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했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고, 해외 스프링캠프까지 동행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인턴이라는 신분상 직원들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인턴이 구단 최대주주의 딸이었다.

키움은 현재 이장석 전 대표가 겉으로는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측근들을 통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직원과 선수들은 누가 실세인지 알기 때문에 해당 인사들 앞에서는 극도로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말단 인턴마저도 구단주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니.

키움 구단 내부는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선수단 역시 구단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키움 선수단도 포함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특정인의 수단으로 전락한 키움의 기형적 구단 운영 정상화 촉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성명서는 키움의 "평균을 한참 밑도는 선수단 운영"과 "열악하고 낙후된 시설"을 직격탄으로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이 선수들과 직원들 사이의 대화에서 거론되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만약 그런 대화 자리에 인턴이 있었다면? 별 경계심 없이 구단주에 대한 불만이나 구단의 문제점을 털어놨을 직원들과 선수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대학생이고, 금방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과연 이런 목소리들이 인턴을 통해 위로 올라가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키움 직원이나 선수들은 A씨의 정체를 알게 된 뒤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했던 말과 행동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불안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키움 히어로즈 대표이사 위재민 변호사(사진=키움)
키움 히어로즈 대표이사 위재민 변호사(사진=키움)

영국 예능 '언더커버 보스'를 본 적이 있나. CEO가 변장하고 말단 직원으로 일하다가 마지막에 정체를 밝히는 프로그램이다. 직원들이 "설마... 진짜 사장님이세요?"라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그 순간이 있다. 그동안 사장 욕하고 회사 불평하던 자신들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그 장면들. 키움에서 벌어진 일이 딱 그런 상황이다. 다만 예능과 달리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일부 키움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이번 사건이 알려진 뒤 "다른 기업 오너 자제들도 다 인턴이나 사원으로 일한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회사일 때 얘기다. 키움은 이장석 전 대표가 영구실격된 구단이다. 프로야구 구성원이라면 KBO 룰을 준수해야 하고, 영구실격자가 구단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식 채용공고도 없이 정체를 숨기고 몰래 들어와서 일한 상황을 다른 경우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KBO의 영구실격 제재는 무의미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 KBO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KBO는 17일 키움 구단에 이장석 딸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사실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고, 영구실격 처분 위반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미국 출장 중인 허구연 총재가 돌아오는 대로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있을 전망이다.

한 에이전트는 "우리 회사 소속 키움 선수들이 언젠가부터 구단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럴 만도 하다. 소름돋는 상황이 어디 한둘인가. 새 대표이사는 알고 보니 구단주 측근이었고, KBO에서 '복귀시 상벌위원회 회부'를 경고한 변호사는 법률자문으로 계약해서 야구장에 나온다. 한때는 구단주 지인이 마케팅 홍보 분야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급기야 옆에서 일하던 인턴이 알고 보니 구단주 딸이었다.

이러다가는 어느 날 턱돌이가 탈을 벗었는데 그 안에 깜짝 놀랄 만한 인물이 들어있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 같다. 영구실격자의 그림자가 구석구석 스며든 이 구단에서 직원들과 선수들이 언제 또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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