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파란만장한 에릭 페디(32)의 야구 인생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24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방출대기(DFA)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바닥에서 일어섰던 페디다. 이번에도 다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페디가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5월 9일 워싱턴을 상대로 커리어 첫 완봉승을 거둔 뒤 모든 게 달라졌다. 이후 12경기에서 0승 7패에 평균자책 6.38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5경기에서는 17.2이닝 동안 26실점을 허용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23일 콜로라도전에서도 3이닝 6실점으로 KO당하면서 카디널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페디에게 이런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야구 인생이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다. 워싱턴의 201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유망주로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시즌 동안 기대에 못 미쳤다. 부상과 부진이 반복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났다.
그때 페디가 선택한 건 포기가 아니라 도전이었다. 2022시즌 후 KBO리그 NC 다이노스행을 택했다. 주변에서는 커리어 마지막 돈벌이라고 했지만, 페디는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결과는 완전한 재탄생이었다. NC에서의 페디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2023시즌 30경기 등판해 180.1이닝을 소화하며 20승 6패 평균자책 2.00의 압도적 성적을 남겼다. 209개 탈삼진으로 KBO 역대 외국인 투수 최초 '200K 클럽'에 가입했고, 정규시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 최동원상까지 휩쓸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페디는 2024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 달러(약 210억원)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당당히 복귀했다. 화이트삭스에서 21경기 7승 4패 평균자책 3.11을 기록하며 재기 성공을 입증했다. 여름 트레이드 시장에서 카디널스로 이적한 뒤에도 10경기 2승 5패 평균자책 3.72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초반에는 그런대로 버티다가 완봉승 이후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탈삼진률은 떨어지고 볼넷은 늘었다. 6월 말부터는 제구력마저 사라졌다.
페디는 23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정말 끔찍했다. 팀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렸다.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야구를 하며 저점과 고점을 다 겪어봤지만 지금은 프로답게 매일 나와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는 페디 대신 유망주 마이클 맥그리비를 선발 로테이션에 고정시킬 예정이다. 페디는 올 시즌 연봉 750만 달러 중 270만 달러가 남아있어 웨이버를 통한 트레이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카디널스가 잔여 연봉을 떠안는다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페디와의 재결합을 고려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상으로 선발진에 공백이 생긴 화이트삭스 입장에서는 페디가 여전히 매력적인 옵션이라는 분석이다. 메이저리그 전체가 투수 줄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페디를 영입해 선발진을 보강하려는 팀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페디의 커리어는 그동안 수차례 막다른 길에 섰다가도 새로운 길을 찾아왔다. 워싱턴에서의 좌절, KBO에서의 재기, 메이저리그 복귀 성공까지. 이번 시련도 그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정일 뿐일 수도 있다. 32세의 베테랑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그동안 보여준 불굴의 의지가 이번에도 빛을 발할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