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연봉 상한제를 둘러싼 MLB 노사갈등이 최고 스타와 커미셔너 간 설전으로 번졌다. 서로 'f'로 시작하는 욕설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거친 대화가 오갔다.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지난주 팀을 찾은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에게 "연봉 상한제 얘기를 하려면 우리 클럽하우스에서 꺼져(get the f--- out)"라며 직격탄을 날렸다고 ESPN과 디 애슬레틱이 29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이에 맨프레드도 "나는 여기서 꺼지지 않을 것(not going to get the f--- out of here)"이라며 맞받아쳤다.
살벌한 대치는 1시간 넘게 진행된 팀 순회 방문에서 터졌다. 맨프레드는 '연봉 상한제'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지만, 리그 경제 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조용히 배트를 들고 앉아 있던 하퍼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하퍼가 맨프레드 코앞까지 다가가 폭언을 쏟아냈다.
하퍼의 분노는 이유없는 '급발진'이 아니다. 그에게는 상한제에 얽힌 쓰라린 기억이 있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1090만 달러(약 153억원)를 받았던 하퍼였지만, 2년 뒤 드래프트 상한제가 도입되자 후배들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최고 계약자인 바이런 벅스턴은 600만 달러(84억원)만 받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액은 925만 달러(130억원)에 머물고 있다. 하퍼는 상한제가 어떻게 후배 선수들의 꿈을 짓밟는지 목격했다.
더구나 이제는 자신의 문제가 됐다. 13년 3억3000만 달러(4620억원) 메가 계약을 맺은 하퍼에게 연봉 상한제는 곧 자신의 미래를 위협하는 칼날이다. 하퍼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하퍼는 평생 상한제의 후유증과 싸워왔다"고 설명했다.
"상한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시즌 전체를 날려버리는 것도 무섭지 않다." 하퍼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1994년 월드시리즈 취소 사태를 연상시킨다. 당시도 연봉 상한제 때문에 파업이 터졌다.
긴박한 순간 외야수 닉 카스테야노스가 중재에 나서 분위기가 진정됐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회의 말미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긴 했지만, 다음날 맨프레드의 전화를 하퍼는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화를 돋운 건 맨프레드와 함께 온 마크 데로사의 발언이었다. MLB 네트워크 해설위원이자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친 MLB 사무국' 인사인 데로사는 선수들에게 "커미셔너는 힘있는 사람이니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는 식으로 말했다. 일부 선수들은 이를 노골적인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한 선수는 "MLB가 약물 검사를 보복 수단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데로사가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카스테야노스는 "정말 격렬했다. 커미셔너와 하퍼가 서로 쏘아붙였다"며 "그게 하퍼다. 15살 때부터 이런 성격이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맨프레드의 팀 순방은 2022년의 99일 파업 이후 선수들과의 관계 회복이란 명목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실상은 노조 우회 작전에 가깝다. 지난 6월엔 "노조 지도부와 선수들 사이에 괴리가 있다"며 "직접 소통으로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겠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MLB가 노조를 건너뛰고 선수들을 직접 설득해 내부 분열을 꾀한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이런 맨프레드의 접근법에 대한 선수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카스테야노스의 말이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매출 168조원을 올리는 리그가 프로야구단 경영을 마치 네일샵 운영처럼 말하는 이유가 뭘까?" 구단들의 수익성 부족을 호소하는 맨프레드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었다.
결국 갈등의 핵심은 근본적인 시각차에 있다. 구단주들은 상한제를 통해 경쟁 균형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잡으려 한다. 반면 선수들은 이를 자신들의 몫을 빼앗으려는 술책으로 본다. 하퍼와 맨프레드의 욕설 공방은 이런 견해차가 얼마나 첨예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2026년 12월 단체협약 만료까지 1년 반.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맨프레드가 꺼내든 관계 개선 카드는 이미 실패작이 됐고, 앞으로 벌어질 더 큰 전쟁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야구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하퍼의 말대로 정말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