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키움 히어로즈 2군팀 고양 히어로즈는 유난히 논란과 괴담이 많았던 곳이다. 다른 팀 2군 선수들이 최신식 훈련시설에서 메이저리그 수준의 식단을 먹으며 과학적으로 훈련할 동안, 고양에선 갑질 논란을 비롯해 각종 어두침침한 소문만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개선하겠다" "반성하겠다"고 넘어갔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심각한 일이 터졌다. 고양 히어로즈 흑역사에 또 하나의 페이지가 새로 쓰였다. 이번엔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팀 에이스이자 리그 에이스인 안우진이 부상을 당했다. 사회복무요원 신분인 안우진에게 2군 코칭스태프가 벌칙 펑고를 강요하다가 어깨 부상을 입힌 것이다.
그간 키움 2군에서 벌어진 논란과 사건사고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9년 허민 의장의 '야구놀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구단 이사회 의장이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유니폼까지 입고 마운드에 올라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던졌다. 구단 소속 선수들을 개인 훈련 상대로 이용한 셈이다.
몇몇 영혼 없는 코치들은 야구인의 자존심을 팽개친 채 의장의 놀이를 거들었다. 스프링캠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박병호, 서건창, 김하성, 이정후 등 리그 정상급 타자들을 상대로 아마추어인 의장이 공을 던지는 황당한 광경이 벌어졌다.
허민 의장의 야구놀이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키움의 대응은 가관이었다. 구단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고양 2군 구장 CCTV를 돌려봤다. 일종의 팬 사찰에 나선 것이다. "여권 분실 사고가 있었던 곳이라 보안상 확인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김치현 당시 단장이 베테랑 이택근에게 "팬에게 접근해서 배후를 알아볼 수 없냐"고 말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결국 2020년 은퇴한 이택근이 KBO에 구단 고위층 징계 요청서를 제출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KBO는 허민 의장에게 직무정지 2개월, 구단과 김치현 당시 단장에게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은퇴선수협회까지 나서서 키움을 성토했다.
시설 문제도 매년 지적되는 고질병이었다. 선수협은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고양 히어로즈 운영은 암울한 수준"이라며 "시설의 열악함에 대한 지적이 매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개선의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열악하고 낙후된 라커룸, 복도에 널려있는 선수들의 짐, 변변한 교육실 하나 없는 현실. 곰팡이 가득한 천장과 누수 등 키움 2군 선수들은 독립리그 수준의 시설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안우진 사건은 과거 사건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허민 의장의 야구놀이는 그래도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었다. 팬 사찰 사건도 시각에 따라 '구단의 과잉반응'으로 봐주려면 봐줄 수도 있었다. 시설 문제는 구장이 시 소유라는 점과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안우진은 그냥 선수가 아니다. KBO리그 최정상급 에이스이자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다. 2022시즌 30경기에서 15승 8패, 평균자책 2.11을 기록한 리그 대표 투수다. 2026년 WBC 한국 대표팀 투수진의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안우진의 전역 후를 주목했다.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향후 몇 년간 포스팅 진출 가능한 선수가 투수는 안우진, 타자는 김도영 둘 정도"라고 할 만큼 귀한 자원이다.
안우진의 현재 신분도 문제다.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인 안우진은 다음 달 17일 소집해제를 앞둔 상황이다. 사실상 민간인과 다름없는 신분이다. 구단 소속 정식 등록 선수도 아니다. 그런 선수에게 청백전 패배 벌칙으로 펑고를 강요했다. 안우진이 거부했는데도 코치진이 지시해서 결국 훈련에 임하게 했다. 그리고 넘어져 어깨를 다쳤다.
키움 구단이 "여러 병원에서 교차 검진을 받고 있다"고 발표한 대목이 심상치 않다. 교차 검진은 보통 부상 정도가 심각한데 수술을 피하고 싶을 때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해 진행한다. 병원 초기 검진에서 안우진은 어깨 관절 쪽 인대 손상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수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어깨다. 안우진은 이미 2년 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몸이다.
안우진에겐 계획이 있었다. 올 9월 소집해제 후 복귀해서 등록일수 1년을 만들고(과거 등록일수와 합산), 내년 3월 WBC에 출전해 20일을 확보해 또 1년을 확보한 뒤 조기에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로드맵이었다. 포스팅과 FA 자격까지 걸리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부상으로 자칫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만약 안우진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고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복무요원 신분에서 벌칙을 강요당하다 부상을 입었으니 구단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도 가능하다. 해당 코치는 물론 2군 책임자, 심지어 선수단 운영부서 책임자인 단장까지 중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제정신인가 싶다"며 "야수도 아니고 투수를 벌칙 펑고 시켰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혀를 찼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도 "믿기 힘든 소식"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키움 2군이지만 이번만큼은 차원이 다르다. 과거엔 '정신적 갑질'이었다면 이번엔 '물리적 피해'를 입혔다. 그것도 팀과 리그 에이스에게. 병원 검진 결과에 따라, 키움 2군의 흑역사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