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에 뜨거운 감자가 떨어졌다. 뉴욕 양키스가 지난달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신인 코어 잭슨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확산되고 있다. 대학 시절 만취 상태에서 유대인 학생 기숙사 문에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렸던 전력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현지 스포츠 전문지 디 애슬레틱이 20일(한국시간) 공개한 기사엔 이례적으로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팬들의 분노가 거세다. "술 때문이라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술은 그저 본성을 드러낼 뿐"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한 팬은 "나도 젊을 때 술에 만취한 적이 있지만 그런 짓은 한 번도 안 했다"며 잭슨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잭슨이 이후 음주운전으로 또 기소된 점이 팬들의 분노를 키웠다. "17세 때 술 때문에 반유대 행위를 했다면서 몇 년 뒤 또 음주운전이라니,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또 다른 팬은 "네브래스카대는 유대인 학생이 많지 않은데 하필 유대인 기숙사 문에 그렸다는 게 우연일까? 누구 방인지 몰랐다는 주장도 의심스럽다"며 잭슨의 해명에 의문을 표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브래스카대 신입생이던 잭슨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한 유대인 학생의 기숙사 문에 나치 십자가를 그렸다. 서구 사회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반유대 행위였다. 잭슨은 "완전히 기억을 잃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며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지만,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잭슨은 2024년 유타대 재학 중 음주운전으로도 기소됐다. 나중에 경범죄로 감경됐지만, 연이은 일탈은 그의 인격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팬들이 특히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술로 인한 실수를 반성했다면서 왜 또다시 음주 관련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양키스는 왜 이 선수를 택했을까. 양키스 아마추어 스카우팅 책임자 데이먼 오펜하이머는 "23년 스카우트 생활에서 가장 철저한 신원 조회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구단주 할 스타인브레너까지 직접 나섰고, 랜디 리바인 구단 사장을 비롯한 유대계 고위 간부들도 지명에 찬성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사건이 벌어진 네브래스카대 관계자들과는 접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철저한 조사라더니, 정작 핵심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 셈이다. 일부 팬들은 "잭슨이 혼자 한 일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부추겼을 수도 있는데, 대학 측이 이런 집단 문제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며 대학의 소극적 대응에 의문을 표했다.
양키스는 잭슨과 슬롯 머니 41만1100달러(약 5억8000만원)보다 훨씬 낮은 14만7500달러(약 2억원)에 계약했다. 논란을 의식한 '할인' 계약이었다. 그럼에도 벌써 하이에이(High-A) 허드슨밸리로 승격시켜 기회를 주고 있다.

잭슨과 그 주변에선 '변화'를 강조한다. 에이전트 블레이크 코로스키는 처음엔 계약 해지를 고려했지만,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관계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모두에 직접 전화해 과거사를 털어놓는 것, 그리고 반유대주의에 대한 집중 교육을 받는 것이었다.
교육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망주 제이컵 스타인메츠의 아버지 엘리엇이 나섰다. 스타인메츠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의 정통 유대교도 선수다. 코로스키가 두 선수를 동시에 대리하는 미묘한 상황에서 스타인메츠 측에 먼저 알린 것이 계기가 됐다.
예시바대 남자농구 감독인 엘리엇은 잭슨과 통화한 뒤 이렇게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지만, 이런 문제에는 완전히 무지했다." 와이오밍 시골에서 기독교 가정에 자란 잭슨이 유대인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었다는 게 잭슨 측 해명이다.
잭슨을 위해 5주간의 집중 과정이 마련됐다고 한다. 예시바대 홀로코스트 연구진이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담당자들은 모두 무보수로 참여했으며 "교육을 통해 증오와 맞서고 싶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팬들은 회의적이다. 한 팬은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진지한 언급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팬은 "신앙을 내세우며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라며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냐는 점이다. 잭슨은 "하나님이 주신 무대에서 용서와 성장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결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계산된 쇼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 역시 의견이 갈린다. 네브래스카대 해리스 유대학 연구센터의 아리 코헨 소장은 교육적 접근을 지지했다. "증오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교육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처벌에만 치중한다면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교육을 직접 주도한 엘리엇 스타인메츠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단순히 농담이라고 생각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다. 진짜 노력을 기울이고, 단지 일자리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며 잭슨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양키스가 감수해야 할 위험은 상당하다. 뉴욕은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를 품고 있다. 14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이들이 잭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그들의 반응이 잭슨의 선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명문 구단 양키스의 평판에도 큰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다.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진정한 후회라면 왜 또 음주운전을 했나"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일부 "17세 때의 최악의 순간으로 평생을 판단받아서는 안 된다"며 구제의 여지를 남겨두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에 그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잭슨이 "앞으로 좋은 시민이자 좋은 사람, 좋은 야구선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야구에서 유망주가 항상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듯, 사람의 변화 역시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다. 과연 잭슨은 여론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양키스는 왜 이런 위험을 감수했을까. 메이저리그에 던져진 묵직한 화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