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구단은 항시 교육을 하고, 선수도 주의한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악성 메시지는 프로 선수로서의 품위를 막론하고 선수를 화나게 한다.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한 KIA 타이거즈 외야수 박정우(27)가 팬과의 SNS 언쟁 끝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KIA 구단은 23일 박정우를 엔트리에서 제외하며 “박정우와 면담을 진행해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쳤다. 팬과 언쟁을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프로 선수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자숙 차원에서 엔트리에서 말소했다”고 밝혔다.
박정우는 지난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2루에서 지나치게 큰 리드를 가져갔고, 김태군의 좌익수 뜬공 때 애매한 위치에 있다가 키움 좌익수 임지열에 의해 2루에서 아웃됐다. 경기 후 박정우는 개인 SNS를 통해 일부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단순한 경기력 지적을 넘어선 인신공격성 메시지도 쏟아졌다. 이에 박정우는 악성 댓글을 남긴 한 팬과 직접 설전을 벌였고, 그 대화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었다.

KIA 관계자는 스포츠춘추와의 통화에서 “구단에서 주기적으로 SNS 교육을 진행한다. 하지만 박정우의 경우 조금 더 현명하게 대응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구단의 교육은 사적인 대화를 삼가고, 감정을 온라인에 드러내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프로 선수로서 구단 이름을 달고 뛰는 만큼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교육만으로는 현실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날 사상 두 번째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그만큼 팬들의 관심과 열정은 뜨겁다. 하지만 그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그것은 응원이 아닌 폭력이 된다. 수십 경기에서 잘해도 단 한 경기 부진에 악성 메시지가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그 대상이 선수 개인을 넘어 가족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이는 선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폭력이다.
최근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 라이언 와이스도 SNS를 통한 도 넘은 팬심으로 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특히 디아즈는 그동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응을 시작했다. 익명 뒤에 숨어 쏟아지는 공격이 선수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박정우의 대응은 분명 잘못됐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됐다. 그러나 그 전에 박정우에 인신공격성 악플과 메시지를 쏟아낸 이들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미 악성 DM과 협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선수협 관계자는 최근 스포츠춘추에 “원하는 선수에게 법률 상담과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고문변호사의 조언과, 필요할 경우 법적 대응까지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송까지 이어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팬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 자체가 선수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는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KIA 관계자 또한 “선수들이 악성 메시지를 받아도 구단에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응원은 비판과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킨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한국 야구 팬의 열정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열정이 선을 넘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일방적 공격이 된다. 경기장에서의 열정적인 응원은 한국 야구의 힘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하는 선수가 존재한다면, 그 리그의 문화는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선수협은 지난 20일 호소문을 발표하고 "국내 프로야구선수 SNS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도넘은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자제해 줄 것을 읍소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제는 구단, 선수협,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나서서 선수 보호와 팬 문화 개선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