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가 출범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무대에 한국 여자야구 선수 5명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아직 프로는 물론 실업 무대조차 없는 한국 여자야구 현실 속에서, 이들의 도전은 단순한 이적이나 진출을 넘어 '가능성의 증명'이자 '미래를 향한 선언'입니다. 스포츠춘추는 WPBL 트라이아웃에 나서는 다섯 명의 선수를 중심으로, 그들의 도전과 성장, 그리고 여자야구의 오늘과 내일을 조명하는 특별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주>

(왼쪽부터) 브리트니와 김라경이 다정하게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김라경 제공)
(왼쪽부터) 브리트니와 김라경이 다정하게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김라경 제공)

[스포츠춘추]

“정말 놀라웠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저도 모르게 계속 따라다니며 친해지고 싶었어요.”

내년 출범하는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omen’s Pro Baseball League·이하 WPBL)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한국 국가대표 투수 김라경(25)이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바로 오른손 없이 태어났음에도 비장애인과 당당히 경쟁해온 미국 여자야구 선수 브리트니 애퍼거(23)였다.

김라경은 “브리트니와 2차 트라이아웃에서 한 팀이 됐다. 브리트니가 외야수인데,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다가 송구할 때 재빨리 왼손으로 글러브를 옮겨가며 공을 던지더라.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브리트니를 졸졸 쫓아다닌 김라경이다. "나도 모르게 브리트니 옆에 계속 있고 싶더라. 친해지고 싶었다”라며 웃었다.

브리트니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이 없었다. 선천적 기형인 ‘저형성증(Hypoplasia)’으로 네 살이 되기 전까지 무려 11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투수로서 안정적인 제구를 갖췄고, 타격 시에는 배트에 특수 의수를 연결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WBSC가 조명한 브리트니의 오른손. (사진=WBSC 갈무리)
WBSC가 조명한 브리트니의 오른손. (사진=WBSC 갈무리)
짐 애보트. (사진=뉴욕 양키스)
짐 애보트. (사진=뉴욕 양키스)

이 모습은 자연스레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조막손 투수’라 불렸던 짐 애보트다. 애보트는 오른손이 없이 태어났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비장애인과 동등한 실력을 갖추며 프로 선수로서 대활약했다. 애보트는 1988년 미국 대표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10년 가까이 활약했다. 1993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노히트 노런까지 기록했다.

김라경에게 브리트니는 단순한 동료를 넘어, 여자야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존재였다.  그는 “나도 여자 선수로서 야구를 해오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브리트니를 보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몇 번 대화를 나눴는데, 항상 웃는 얼굴로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 야구를 하더라. 너무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브리트니 같은 멋진 선수들과 함께했던 트라이아웃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도 했다. 김라경은 "브리트니가 나와 마주치자 웃으며 '굿럭(Good Luck)'이라고 해줬는데, 그 선수를 보면서 '미국 트라이아웃에 오길 잘했다. 이렇게 멋진 선수들이랑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같이 꿀 수 있어서 영광이고 인생이 너무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WPBL 트라이아웃은 단순한 테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개국에서 모여든 여자 선수들이 국적과 조건을 넘어 프로야구 선수라는 하나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리이자, 야구가 가진 힘을 다시금 일깨우는 무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국의 비장애인 투수 김라경과 미국의 장애인 외야수 브리트니가 나란히 서 있었다.

브리트니는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김라경과 함께 WPBL 최종 트라이아웃까지 진출했다. 이제 남은 건 오는 10월 열릴 예정인 WPBL 드래프트다. 과연 김라경과 브리트니가 다가올 드래프트에서 이름을 불리고, 당당히 프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이미 두 여성은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고, 결과에 상관없이 이들의 도전은 이미 여자야구의 새 역사다.

저작권자 © 더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