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미국 야구장에서 다 큰 어른이 아이의 홈런볼을 뺏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여성 팬이 어린 소년의 아버지와 언쟁을 벌인 끝에 공을 가져간 것이다. 하지만 양 구단이 나서 빠르게 후속조치를 한 덕분에 이야기는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상황은 한국시간 7일 마이애미 론디포트 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애미 말린스 경기에서 벌어졌다. 필리스 외야수 해리슨 베이더가 좌측 담장 너머로 날린 홈런볼을 둘러싸고 4명의 팬이 달려들었다. 그 중 한 남성이 공을 잡았고 아들이 낀 글러브에 넣어주며 포옹했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평범한 야구장 풍경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상황이 꼬였다. 필리스 유니폼을 입은 한 여성 팬이 남성에게 다가와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여성은 홈런볼이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남성과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당황한 아버지가 아들의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주변 관중들이 이 장면을 촬영했고,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추가로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이 여성은 "그건 내 것이었어. 당신이 내게서 가져간 거야"라며 남성을 압박했다. 하지만 영상만으로는 실제로 누가 먼저 공을 잡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여성을 '필리스 카렌'이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카렌'은 미국에서 자기중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중년 여성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다.
이 사건은 ESPN 스포츠센터까지 들썩이게 했다. '소 디스 해픈드(So This Happened)' 코너에서 진행자들이 이 사건을 다뤘다. 진행자 니콜 브리스코는 "여성 팬이 정말 화가 났더라. 아버지는 '이게 그렇게까지 중요하다면'이라며 아이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건네줬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이브스 진행자는 "정말 그 여자가?"라며 혀를 찼다. 브리스코 진행자는 "카렌이라고 부르긴 싫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린 뒤 "어른이 아이로부터 공을 빼앗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공을 직접 잡지 못했다면 그건 누구든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도 론디포 파크 직원들은 이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경기 도중 마이애미 구단 직원이 소년과 그의 누나에게 굿즈가 가득 담긴 선물 가방을 전달했다. 직원은 "정말 미안해. 괜찮니?"라며 소년을 위로했고,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소년에게 생일 축하 인사도 건넸다.
마이애미 중계방송 캐스터 카일 시엘라프는 방송 중 "이런 게 바로 좋은 일이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생긴다"라며 "아버지가 정말 잘 참았다. 그 여자한테 화가 났을 텐데, 나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주변 관중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필리스 구단도 가만있지 않았다. 경기 후 구단은 홈런을 친 베이더와의 만남을 주선했고, 베이더는 소년에게 사인이 들어간 배트를 선물했다. 경기는 필리스의 9대 3 승리로 끝났지만, 진짜 승자는 두 구단의 따뜻한 배려를 받은 어린 팬이었다. 홈런볼 하나를 잃었지만, 그보다 훨씬 값진 추억을 얻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