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클레이튼 커쇼는 포스트시즌만 되면 다른 투수가 됐다. 정규시즌 평균자책 2.54가 10월엔 4.49로 뛰었다. 피홈런율은 두 배가 됐고, 중요한 순간마다 무너졌다. '가을 커쇼'란 오명이 따라붙었다. 그런데도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1차 투표 헌액이 확실하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미국 야구 통계 전문사이트 팬그래프의 제이 제피는 지난 19일(한국시간) 커쇼의 은퇴 발표와 함께 "확실한 1차 투표 명예의 전당 헌액자"라는 분석 기사를 내놨다. 통산 222승 3,039탈삼진에 사이영상 3회, MVP 1회를 기록한 커쇼가 포스트시즌 부진에도 불구하고 2031년 첫 투표에서 쿠퍼스타운 입성이 확실시된다는 평가다.
제피가 커쇼를 높이 평가하는 건 정규시즌 기록 때문이다. 커쇼의 통산 평균자책 2.54는 1947년 흑백통합 이후 2,500이닝 이상 투수 중 최고 기록이다. 2위인 화이티 포드(2.75)와도 0.21이나 차이가 난다.
제피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1947년 이후 평균자책 상위권은 커쇼를 필두로 포드, 짐 팔머와 톰 시버(2.86), 후안 마리샬(2.89), 밥 깁슨(2.91), 페드로 마르티네스(2.93) 순이다. 구장과 리그 환경을 보정한 ERA-에서도 커쇼는 65로 페드로(66)를 앞서며 1위를 기록했다.
제피는 "샌디 쿠팩스와 비교해봐도 커쇼가 앞선다"며 "쿠팩스는 2,324.1이닝에서 평균자책 2.76, ERA- 75를 기록했는데, 2,000이닝 기준이라면 평균자책 4위, ERA- 7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커쇼는 다저스 한 팀에서만 18시즌을 뛰며 프랜차이즈의 상징이 됐다. 외야수 잭 위트, 유격수 빌 러셀과 최다 시즌 기록을 공동 보유한다. WAR로는 팬그래프 78.7승, 베이스볼 레퍼런스 77.6승으로 다저스 투수 역대 1위다. 탈삼진도 팀 최고 기록이다.
제피가 개발한 사이영상 예측 지표 S-JAWS에서 커쇼는 65.1점으로 역대 20위에 올랐다. 현역 투수로는 저스틴 벌랜더(66.1)에 이어 2위지만, 벌랜더가 700이닝 가량 더 던진 걸 감안하면 효율성은 압도적이라는 게 제피의 분석이다.
베이스볼 서번트 자료에 따르면 커쇼의 변화구도 역대급이었다. 타자들은 그의 커브볼에 타율 0.145, 슬라이더엔 타율 0.183만 기록했다. 헛스윙율은 각각 36.5%, 38.8%에 달했다.
물론 포스트시즌에 약했던 건 사실이다. 평균자책 4.49, FIP 3.81로 정규시즌(평균자책 2.54, FIP 2.85)과는 딴 사람이 됐다. 피홈런율도 0.74에서 1.39로 뛰었다. 2014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2017년 휴스터 애스트로스전, 2023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 등 굵직한 실패들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제피는 이런 부진에도 변명거리가 있다고 봤다. "공격진과 불펜의 뒷받침 부족, 감독의 잘못된 기용, 상대팀의 부정행위 등이 겹쳤다"는 분석이다. 201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 13이닝 1자책, 2016년 워싱턴 내셔널스전 불펜 세이브, 2020년 밀워키 브루어스전 8이닝 무실점 등 빛나는 순간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제피는 "매디슨 범가너나 밥 깁슨 같은 포스트시즌 영웅은 아니지만, 정규시즌 지배력이 이런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평가했다.

제피는 커쇼의 사회적 논란도 언급했다. 지난 3년간 다저스 프라이드 나이트를 두 차례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2023년 드랙 공연단 초청 취소 압박, 올해 6월 무지개 모자에 동성애 반대 성경 구절 적기 등이 논란이 됐다.
제피는 "트럼프 행정부의 LGBTQ+ 권리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커쇼의 행동은 분열적이고 실망스러웠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명예의 전당 입성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그보단 '커쇼 챌린지'를 통해 2,300만 달러(약 322억원)를 모금하고,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 차별을 규탄하는 발언을 했던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제피는 커쇼에 대해 "논란의 여지없이 다저스 역사상 가장 결실 풍부한 시대를 정의했고, 한 세대를 넘어 역대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커쇼는 2031년 BBWWA 투표에서 75% 이상 득표하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제피는 칼럼을 "커쇼의 유산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 위대함과 실망, 그 사이 모든 것을 함께 고려해서"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정규시즌 18년간 보여준 압도적 지배력 앞에서 포스트시즌 부진이나 일부 논란이 걸림돌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커쇼에게 2031년 쿠퍼스타운의 문은 활짝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