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대구]
1차전 패배가 가져다준 부담감, 경기 개시를 앞두고 내려진 우천 지연 결정까지. 여러 악조건 속에 마운드에 올랐지만, 원태인이 왜 푸른 피의 에이스라고 불리는지 보여준 경기였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눈부신 호투로 팀을 준플레이오프 무대로 이끌었다.
원태인은 10월 7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2차전에 선발 등판해 NC 다이노스 타선을 6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팀의 3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는 오전부터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다 경기 직전부터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45분 지연 개시됐다. 2시에 맞춰 등판 준비를 한 원태인으로서는 낭패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 후 원태인은 취재진과 만나 "사실 몸을 다 풀어놓은 상태였다. 2시에 모든 걸 맞춰놨는데 개시 10분 전에 지연돼서 사실 걱정이 많았다. 루틴이 다 깨졌다"고 털어놨다.
원태인은 "최대한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 어깨가 안 식었으면 생각했다"면서 "작년 한국시리즈 1차전이 생각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원태인은 많은 비 속에 등판해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6회초 쏟아진 비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원태인은 "그때는 몸을 풀기 전에 경기가 지연됐는데, 이번엔 몸을 다 푼 상태에서 지연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원태인은 몸을 두 번 풀고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그는 "몸을 두 번 풀고 등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작부터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경기가 경기인 만큼 핑계를 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루틴이 깨진 가운데서도 원태인은 꿋꿋했다. 1회초 선두타자 김주원을 150km 속구로 삼진 처리한 뒤, 2번 최원준도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2사 후 박민우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맷 데이비슨을 범타 처리하고 1회를 실점 없이 넘어갔다.
다만 워낙 부담감이 큰 경기인 데다 평소와 다른 루틴으로 던진 여파가 경기 중반부터 몰려왔다. 원태인은 "4회가 끝난 뒤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즌 땐 느껴보지 못한 그런 힘든 느낌이었다"며 "경기 중에는 원래 그런 걸 못 느꼈는데 오늘은 4회가 끝나고 내려왔는데 정말 힘들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치더라"고 말했다.
투구수 100구가 가까워진 6회에도 위기가 왔다. 1사 후 이날 멀티히트를 허용한 상대 박민우 타석. 원태인은 "민우 형 타석에선 정말 팔이 약간 헛도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힘이 다 됐나 보다 생각했는데 데이비슨 타석에서 몸에 맞는 볼까지 나왔다"고 털어놨다.
원태인은 "어떡하지 싶었는데 최일언 투수코치님이 마운드에 올라오셨다. 바꾸실 줄 알았는데, 코치님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내려가셨다"며 "그 말씀을 듣고 '벤치에서 아직 내게 믿음이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덕분에 위기 상황을 잘 막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베테랑 포수 강민호의 좋은 리드도 원태인의 호투에 힘이 됐다. 데이비슨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권희동 타석. 여기서 NC 벤치는 정규시즌 원태인을 상대로 강했던 박건우 대타 카드를 꺼냈다. 원태인은 "건우 형 타석에서 (승부구) 던지기 전까지 패스트볼을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강민호 형의 리드에 따라 던졌다"며 "지난번 창원에서 만났을 때 건우 형을 3-2에서 커브로 삼진 잡아서 그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패스트볼 사인을 내더라. 민호 형이 타자와 수 싸움을 이겨주셔서 감사했다"고 포수에게 공을 돌렸다.
이날 삼성 타선은 1회 선두타자 이재현의 안타 이후 경기 종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추가하지 못했다. 포스트시즌에서 1안타만 치고 승리한 팀은 이날 삼성이 역대 최초다. 이에 관해 원태인은 "사실 몰랐다"면서 "더그아웃에 들어오면 바로 다시 나가고, 들어오면 또 바로 나가고 한 기억은 있는데 모르고 있었다"며 너스레로 답했다.
"다 던지고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중계방송을 통해 팀에 안타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쉴 시간이 없었구나' 싶더라." 원태인은 "사실 이런 경기에서 다득점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야수들이 2점을 안겨준 상태로 시작한 만큼 2점은 어떻게든 지켜야겠다"며 "더 많은 점수는 바라지도 않았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늘 내 공이 좋으니까 실투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1차전 패배 뒤 팀의 운명을 짊어지고 선발로 나선 만큼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원태인은 "긴장도 많이 했고 부담도 됐다. 업셋이라는 게 정말 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며 "올해 우리 팀은 최다 관중 1위도 했고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한 해였는데 그런 마무리가 되면 정말 죄송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준플레이오프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컸고, 결과가 이겨서 야구를 더 오래 할 수 있게 됐다. 기분이 좋다"고 웃어 보였다.
원태인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팀이 와일드카드보다 좋은 경기를 펼칠 거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번에는 첫 경기를 지다 보니 부담이 심했다. 와일드카드 어드밴티지가 있는 게 좋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크다. 지켜내야 한다, 준플레이오프는 가야 본전을 한 것 같은 느낌이 있다"면서 "준플레이오프부터는 타선 분위기가 살아났으면 한다.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이 잘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2차전 선발 등판 예정이었지만, 전날 1차전에서 불펜 등판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했던 원태인이다. 이에 대해 원태인은 "가을야구에선 뭐든지 해야 한다. 와일드카드 시리즈 들어가기 전에 투수코치님이 '1차전 준비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기에 '가을야구에서는 저한테 묻지 마시고 코치님 판단대로 기용하시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가을야구에선 팀이 이길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던질 수 있다." 원태인의 말이다.
원태인은 대구 홈 팬들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홈에서 잘 던지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팬들이다. 경기 중에도 힘들면 3루 관중석을 본다. 이렇게 많은 팬들이 응원해준다는 힘을 얻고 마인드 셋하고 들어간다. 그 힘이 가장 큰 것 같다."
끝으로 원태인은 "몸 상태는 너무 좋다. 일각에서 '언젠가 안식년이 올 거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이겨내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도 성장한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작년에는 한국시리즈 마지막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끝까지 버텨내는 선발투수로서 성장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