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대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다. 지난 4년 사이 세 차례나 100패 시즌을 기록하며 비참한 시즌을 보낸 팀, 4년간 178승 368패 승률 0.326으로 세 번 싸우면 한 번 이기기도 버거워하던 최약체 팀이 올 시즌 달라졌다.
8월 18일까지 볼티모어는 61승 56패 승률 0.521로 2017년 이후 5년 만에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비록 ‘죽음의 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이라 지구 순위는 4위에 그치고 있지만 2위와 승차는 1.5경기차로 사정권이다.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1.5경기차로 충분히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려볼 만하다.
“리빌딩에는 고통 따라…몸살 나도 참고 견뎌야 강해지듯 인내 필요”

‘한국의 볼티모어’ 한화 이글스를 이끄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도 만년 약체팀의 선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18일 대전 삼성전을 앞두고 만난 수베로 감독은 메이저리그 순위싸움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볼티모어를 언급했다. “볼티모어가 지난 4년 동안의 부진이 무색할 정도로 올 시즌 잘하고 있다. 100패를 세 번이나 당한 팀 아니었나. 올해는 대단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수베로 감독의 말이다.
최근 4년간 볼티모어가 보낸 치욕의 시간은 최근 한화의 행보와도 비슷하다. 한화 역시 2018년 가을야구 진출을 끝으로 2019년 9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3년 연속 리그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2020시즌에는 역대 최다 타이 18연패를 당하는 등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 95패를 당했다. 올해는 2020년보다 더 낮은 0.304의 승률로 역대 최초 100패팀이 될 위기다(99패 페이스).
수베로 감독은 볼티모어가 달라진 비결로 “아픔이 따랐지만 변화를 시도했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볼티모어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올드’한 팀으로 평가받았다. 다른 구단이 첨단 기기와 데이터 분석을 도입해 혁명을 진행할 때 볼티모어는 케케묵은 옛 방식을 고수했다. 선수 스카우트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제 유망주 영입을 한동안 완전히 중단하기도 했다. 기껏 뽑은 유망주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트래비스 소칙과 벤 린드버그가 쓴 책 ‘MVP 머신’에는 데이터 혁명에서 뒤처진 팀 볼티모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한다. 볼티모어 투수 존 민스는 “이 팀은 지난 5년간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판했다. 저자들은 “볼티모어는 초고속 카메라도 없었고, 중앙 데이터 베이스도 없었으며, 파벌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볼티모어 출신 투수 잭 브리튼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뒤 한 기자에게 “이 팀이 데이터 분석을 활용하는 방법은 볼티모어와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볼티모어에서 실패한 유망주, 정체된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첨단 육성법의 도움을 받아 잠재력을 터뜨린 사례가 여럿 나왔다. 볼티모어 시절인 2010~2013년 평균자책 5.46에 그쳤던 제이크 아리에타는 팀을 떠난 뒤 기량이 만개해 2015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다. 볼티모어에서 평균 이하 수비수였던 매니 마차도는 LA 다저스로 이적한 뒤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변신했다. 그러면서 크리스 데이비스 같은 ‘먹튀’에 7년 총액 1억6100만 달러(약 1873억원)의 거액을 투자해 돈을 날렸다.
그런 볼티모어가 지난 2019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볼티모어는 ‘구단주만 빼고 다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대적인 팀 개혁 작업을 시작했다. 휴스턴 데이터 혁명의 핵심 인력인 마이크 엘리아스를 단장으로 영입하고 역시 휴스턴 출신인 시그 메이달, 크리스 홀트를 영입해 휴스턴 방식대로 구단을 현대화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스카우트 인력을 해고하고 데이터 분석 파트의 비중을 늘렸다. 그전에는 쓰지 않던 웨이티드 볼과 초고속 카메라를 도입하고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맞춤형 선수 지도를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레벨만이 아니라 마이너리그 모든 단계에서 일관성 있는 지도법을 도입했다.
변화에는 진통이 따랐다. 변화가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밑바닥에 있다가 보통 수준으로 올라간(볼티모어 투수 마이클 바우먼의 말)” 만큼 하루아침에 팀이 달라지길 기대할 순 없었다. 볼티모어는 4년 동안 최하위권을 전전하며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올바른 변화와 방향성이 올 시즌 들어 마침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수베로 감독은 “유망주 애들리 러치맨이 잠재력을 터뜨렸고 마무리 투수 호르헤 로페즈(미네소타로 이적)도 활약했다. 팀의 신구조화가 굉장히 잘 이뤄졌다”면서 “양키스, 토론토, 보스턴과 같은 지구 소속인데도 잘 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볼티모어 40인 로스터에서 1989년 이전에 태어난 선수는 포수 로빈슨 치리노스(1984년생) 하나뿐이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선수들로 로스터를 가득 채운 뒤 새로운 육성법을 적용해 키워냈다. 다른 팀에서 쓴맛을 본 선수를 데려와서 ‘개조’에 성공한 사례도 나왔다. 볼티모어가 5년 만에 대반전을 이룬 비결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늦게 변화에 동참한 볼티모어처럼, 한화도 2020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인 팀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낙후된 팀 시스템을 정비하고 첨단 장비와 데이터 분석, 새로운 훈련법을 도입했다. 다른 팀들이 수년 전에 참여한 혁명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볼티모어에겐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화 역시 하루아침에 환골탈태하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수베로 감독은 자신이 과거에 맡았던 두 번의 리빌딩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의 카라카스 팀을 2001년에 맡아 2006년 정상에 올린 경험이 있다. 이후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라 과이라(La Guaira) 팀 리빌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서 “리그는 달라도 야구는 결국 같은 야구다.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00패 팀이 시스템을 바꾸고 변화하는 데 진통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사람의 몸도 면역이 생기려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 몸살이 나도 참으면서 견뎌야 더 강해지지 않나. 건물을 지어도 63층부터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1층부터 단계별로 쌓아 올리는 과정이 있다. 믿음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베로 감독은 “한화 역시 점점 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희망적인 면을 바라봤다. 비록 지금은 3년 연속 최하위로 수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100패팀 볼티모어가 달라진 것처럼 한화 역시 언젠가는 결실을 거둘 거라는 희망이다.
“경직된 트레이드 시장…드래프트에만 의존” K-리빌딩이 어려운 이유

다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성공 모델을 한화가 그대로 따르는 데는 한 가지 큰 장애물이 있다. 수베로 감독은 “트레이드!”라고 외쳤다. 선수 이동이 활발한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선수 이적이 좀처럼 보기 드물다. 수베로 감독은 “중남미 윈터리그보다도 트레이드 시장의 유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간혹 트레이드를 하더라도 ‘소소한’ 수준의 선수 교환이 이뤄지는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베로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선 40인 로스터에서 60%는 잠재적 트레이드 카드로 본다. 그 정도로 선수 이동에 열려 있다. 하지만 KBO리그는 그렇지 않다”면서 “선수 이동이 없으니 드래프트로 뽑은 내부 자원에 의존해야 한다. 계속 드래프트, 드래프트, 드래프트의 연속”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화의 리빌딩 역시 자체 생산 선수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2년 가까이 리빌딩을 진행했지만, 현재 한화 주전 멤버를 보면 대부분 4~5년 이상 육성 기간을 거친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갓 입단한 신인 선수가 1군에 적응하고, 팀에 큰 임팩트를 줄 정도로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큰 기대 속에 입단한 문동주도 잦은 부상으로 아직 완전히 1군에 자리잡지 못했다. 어쩌면 5년이 걸린 볼티모어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수베로 감독은 볼티모어 얘기를 하다 말미에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은 외부 FA(프리에이전트) 영입”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두 명 정도 대형 FA를 영입한다면, 팀이 본격적으로 날아오를 준비가 됐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한화에도 해당되는 언급이다. 자체 육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부 영입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기가 조만간 한화에도 찾아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