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샐러리캡 규제를 우회하는 다년계약 선택지가 생겼지만, 아직 ‘입도선매’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다년계약을 추진하기 애매한 선수 구성과 타이밍, 그리고 향후 불거질 내부 FA 등급 문제가 걸림돌이다.
NC 다이노스는 올겨울 가장 많은 FA 선수가 나오는 팀이다. 한국시리즈 종료 직후 주전 포수 양의지와 2루수 박민우, 유격수 노진혁, 외야수 이명기와 권희동, 투수 원종현과 이재학, 심창민이 FA 자격을 얻는다. 이 가운데 심창민 외엔 대부분 FA 신청이 확실시돼 최소 7명의 NC발 FA가 나올 전망이다.
이 중 NC가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로는 양의지, 박민우, 노진혁이 꼽힌다. 그런데 이들 셋을 잡으려면 타 구단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양의지는 복수 구단에서 관심을 보이는 올겨울 최대어로 ‘100억 돌파’가 유력하다.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노진혁도 2개 구단이 탐내고 있어 몸값이 뛸 전망. 박민우도 우승은 하고 싶은데 2루수가 약점인 팀의 공·수·주를 단번에 업그레이드해줄 카드로 높은 몸값이 예상된다.
타 구단과 경쟁도 경쟁이지만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샐러리캡 족쇄도 고려해야 한다. NC의 올해 선수단 연봉총액과 인상폭을 감안하면 2023년 샐러리캡 여유공간은 50억원 안팎이 예상된다. FA 4년 계약 기준으로는 200억 정도를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양-박-노’를 전부 잡기엔 빠듯한 금액이다.

다른 구단 중에는 이런 문제를 다년계약으로 사전에 해결한 사례가 있다. SSG 랜더스는 지난 겨울 투수 박종훈(5년 65억원), 문승원(5년 55억원), 외야수 한유섬(5년 60억원)과 릴레이 다년 계약을 맺었다.
SSG는 샐러리캡 시행 전인 2022년 연봉에 대부분의 수령액을 몰아넣는 방식으로 계약을 설계했다. 전체 연봉 중 한유섬은 42.9%, 문승원은 34.0%, 박종훈은 32.1%를 계약 첫해 받는 구조다. 비슷한 시기 5년 120억에 계약한 삼성의 구자욱도 연봉의 27.8%를 2022시즌에 몰아서 받는다.
반면 NC는 지난겨울부터 현재까지 아직 내부 FA와 다년계약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임선남 NC 단장은 “이번 FA 선수들과의 다년계약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FA 자격 취득을 앞둔 상황에서 다년계약을 제안하는 건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는 판단이다.
다년계약은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기량이 정점에 달한 선수가 대상이다. 부상 리스크가 적고, 계약기간 내내 꾸준한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를 대상으로 삼는다. 1995년생 박세웅(계약기간 나이 만 28~32세), 1993년생 구자욱(만 29~33세), 1991년생 박종훈(만 31~35세)이 대표적이다.
주요 다년계약 선수 출생연도와 계약기간 나이
한유섬 1989년생. 33~37
구자욱 1993년생 29~33
문승원 1989년생 33~37
박종훈 1991년생 31~35
박세웅 1995년생 28~32
그런데 NC의 내부 FA 중에 최대어인 양의지는 1987년생으로 올해 만 35세 베테랑이다. 구단 입장에서 다년계약을 제안할 만한 대상자는 아니다. 노진혁의 경우 1989년생으로 나이는 한유섬, 문승원과 같지만 최근 4년간 부상으로 연평균 116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다년계약에서 멀어졌다.
1993년생 박민우는 올해 만 29세로 다년계약을 맺을 만한 나이와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출전 정지 기간이라 계약 얘길 꺼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는 이명기, 권희동도 마찬가지. NC 입장에선 마땅한 다년계약 대상도 없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NC가 다년계약을 선택지에서 배제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FA 등급제’가 문제다. 임선남 단장은 “물론 다년계약으로 선수를 묶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년계약을 미리 맺어 놓으면 나중에 나올 내부 FA 선수의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FA 등급제는 해당 시즌이 아닌 최근 3년간의 평균 연봉 및 옵션 수령 금액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팀 내에서 1~3위/리그 전체에서 1~30위인 선수는 A등급, 팀 내 4~10위/리그 전체에서 31~60위인 선수는 B등급, 팀 내 11위 이하/리그 전체 61위 이하인 선수는 C등급이 된다. 해당 등급이 되려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만약 다년계약으로 내부 FA 3명을 묶는다고 치면, 이들 중에서 팀내 연봉 1~3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나머지 선수들이 FA 취득시 B, C등급으로 밀릴 확률이 높아진다. 내부 FA 잡으려다 다른 내부 FA를 뺏기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다년계약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강팀을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아쿠냐 주니어, 오스틴 라일리, 아지 알비스, 스펜서 스트라이더, 마이클 해리스 등 젊은 선수들을 줄줄이 장기계약으로 묶어놨다.
NC 다이노스로 치면 구창모, 김주원, 송명기, 김시훈이 어릴 때 10년 계약을 미리 맺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KBO리그에선 여러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한 그림이다. 임선남 단장도 “현재 제도 하에서는 메이저리그 식의 유망주 장기계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NC는 내부 FA의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전략적인 접근법을 취할 예정이다. 내부 FA를 잡을 경우와 놓치는 경우를 모두 대비해 다양한 플랜을 마련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선택지 가운데 ‘다년계약’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