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레즈가 계속 한국에 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사진=삼성)
수아레즈가 계속 한국에 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사진=삼성)

 

[스포츠춘추]

취지만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막상 시행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게 탁상행정의 특징이다. KBO가 새로 내놓은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제도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외국인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 손실을 방지한다는 취지지만, 일선에선 선수 수급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KBO는 11월 1일 “2024시즌부터 외국인선수가 시즌 중 부상으로 전력 이탈 시 대체할 수 있는 ‘대체 외국인선수 영입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KBO 이사회에서 논의한 이 제도는 “외국인선수가 장기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할 경우 즉각적인 선수 수급의 어려움과 팀 간 전력 불균형 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다.

쉽게 말해 부상을 당한 기존 외국인 선수 대신 임시 외국인 선수와 계약할 수 있는 제도라고 보면 된다. 프로농구 KBL에 자리 잡은 외국인 선수 임시 계약과도 비슷하다. 

새 제도에선 소속 외국인선수가 6주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당할 경우, 해당 선수를 재활 선수명단에 등재한 뒤 선수가 복귀할 때까지 교체 횟수를 사용하지 않고 대체 외국인선수와 계약을 체결해서 경기에 기용할 수 있다. 물론 기존대로 부상 선수와 계약해지 후 새로운 외국인선수를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재활 선수로 등록된 기존 외국인선수는 최소 6주 경과 후 리그에 복귀할 수 있다. 복귀할 경우 대체 외국인선수는 다른 외국인선수와 교체(등록횟수 1회 차감)하거나 웨이버를 통해 계약 해지하는 절차를 거친다. 대체 외국인선수의 몸값은 기존 교체 외국인선수와 동일하게 1개월당 최대 10만 달러로 제한했다.

한화 버치 스미스(사진=한화)
한화 버치 스미스(사진=한화)

 

“6주만 뛰러 올 선수 없을 것” 선수 수준도 떨어져 실효성 의문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간명하다. A 구단 단장은 “그동안 외국인 선수 부상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친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전력에서 절대적인 와중에, 부상으로 빠져버리면 시즌 전체를 그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기껏 외국인 선수를 구해도 비자 받고, 팀에 합류하고, 리그에 적응하는 동안 시즌이 훌쩍 지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일례로 한화 이글스는 2023시즌 외국인 에이스를 기대하고 영입한 버치 스미스가 개막전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어깨 통증으로 이탈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결국 스미스는 다시 마운드에 돌아오지 못했고, 시즌 1호 퇴출 외국인 선수가 됐다. 

최근 사례로는 리그 우승팀 LG 트윈스가 있다. LG는 에이스 아담 플럿코의 내전근 부상으로 시즌 막판 골머리를 앓았다. 8월 말 부상으로 이탈한 플럿코는 결국 정규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본인의 실제 몸 상태나 의사와는 무관하게 ‘먹튀’로 알려지면서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부상 때문에 좋은 외국인 선수(앨버트 수아레즈)의 보류권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례도 있다. 이론적으로 새 제도에선 기존 외국인 선수를 보류권으로 묶어두고 부상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릴 동안 대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서 기용하면 된다. 간혹 나오는 외국인 선수 ‘먹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묘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취지 자체는 괜찮아 보이지만, 구단 실무자와 스카우트 사이에선 과연 의도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지방구단 스카우트는 “야구의 외국인 선수 시장은 농구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농구처럼 글로벌 시장에 언제든 데려다 쓸 수 있는 선수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여러 구단 관계자, 스카우트는 현실적으로 대체 외국인 선수 수급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 구단 관계자는 “100만 달러를 주고 정식으로 데려올 외국인 선수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인식이 크게 개선됐지만 여전히 낯선 아시아 리그에서 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선수가 적지 않다. 시즌 중 6주만 와서 뛰라고 하면 과연 오려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 말했다. 

지방 B구단 단장은 “마이너리그 소속 선수를 데려오는 건 불가능하다. 독립리그 선수나 타이완(대만) 선수 중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런 리그 선수 중에도 키움이 시즌 중반 영입한 로니 도슨처럼 성공사례가 나올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상위 마이너리그 선수에 비해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에 B 단장은 “차라리 우리 팀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대체 외국인 선수를 뽑아도 기존 교체 외국인 선수와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거란 의견도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어차피 대체 외국인을 뽑아도 그날 바로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리쿠르트하고 계약하고 비자 받고 입국해서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서 “투수의 경우엔 투구 수를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투수보다 적응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자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6주가 지나갈 수도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물론 임시로 뛰는 동안 기존 외국인 선수를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면 정식 계약도 가능하다는 점이 동기부여가 될 순 있다. KBO 관계자도 “와서 잘하면 정식 선수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선수가 하기에 달려있다”면서 새 제도의 실효성을 어필했다. 

LG 외국인 투수 플럿코는 플레이오프 2차전 등판 부진 뒤 개인 SNS에 날아온 특정 욕설 메시지로 화제가 됐다(사진=LG)
LG 외국인 투수 플럿코는 플레이오프 2차전 등판 부진 뒤 개인 SNS에 날아온 특정 욕설 메시지로 화제가 됐다(사진=LG)

 

선수협의 비판 “새 제도, 선수들과 논의도 없이 덜컥 시행”

KBO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구단들은 ‘육성형’ 외국인 제도 시행을 검토했었다. 이후 육성형 외국인과 대체 외국인 제도를 두고 논의를 펼쳤고, 대체 외국인 선수 쪽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아 내년부터 실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KBO 고위 관계자는 “이사회에선 대체 외국인보다는 육성형 외국인 쪽이 오히려 더 실효성이 없을 거라고 봤다”고 전했다.

프로야구 선수협회(선수협)가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에 반대해서, 대체 외국인 선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선수협 관계자는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다. 말만 ‘육성형’이고 몸값을 30만 달러로 설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그렇게 해선 기존 외국인 선수와 차이가 없다’고 의견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KBO 관계자도 육성형 외국인 제도에 선수협의 반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보다 선수협에서 우려하는 건 따로 있다. 선수협 관계자는 “피치클락, ABS 볼 판정 제도도 그렇고 이번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도 선수들을 배제한 채 구단끼리 논의하고 결정한다. 가장 영향을 받는 선수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면서 “보도자료 발표 2시간 전에 알리는 건 협의가 아니라 일방 통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단 사이에선 KBO 총재가 연임을 위해 새 제도를 충분한 검증 없이 밀어붙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KBO 관계자는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는 지적에 “일단 시행해 보고 문제점이 나타나면 고치면 된다”는 대답을 내놨다. 아무래도 내년 시즌 KBO리그는 다양한 제도를 테스트하는 실험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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