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타격코치(사진=LG)
이호준 타격코치(사진=LG)

 

[스포츠춘추]

감독 교체 한번 요란하게도 한다. 올가을 프로야구 챔피언 자리를 다투는 팀은 LG 트윈스와 KT 위즈지만, 시끄러운 걸로 따지면 SSG 랜더스가 단연 챔피언이다. 이미 플레이오프 기간 김원형 감독을 경질해 모든 화제를 빨아들였던 SSG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호준 코치 감독설’ 논란으로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보통 국내 프로야구단의 감독 선임 작업은 소리소문없이 진행된다. 발표하기 전까지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조금이라도 단서가 새나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인다. 혹시라도 언론에 먼저 보도됐다가 여론이 시끄러워지고, ‘본부’에서 마음을 바꾸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그렇게 조심해도 치열한 취재 경쟁 속에 먼저 보도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로는 모기업을 통해 흘러나온 정보가 지상파 방송사나 중앙일간지를 통해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건, 감독 선임 과정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길 원하는 구단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SSG는 참 이상하다. 김원형 감독 경질과 함께 온갖 감독 후보들의 실명이 야구계와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추신수, 박찬호부터 이호준 LG 타격코치, 선동열 전 감독, 이동욱 전 NC 감독, 이숭용 전 KT 단장까지 각양각색의 인사가 감독 후보로 이름이 나왔다. 매끄러운 감독 선임을 위해 중요한 ‘보안’ 단계에서 실패했다.

소문으로만 떠도는 수준이면 그나마 낫다. 그런데 SSG는 고위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몇몇 감독 후보를 사실상 ‘인증’했다. 그것도 한국시리즈를 앞둔 팀의 1군 메인 타격코치 이호준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 이 보도가 나오고 조금 뒤엔 이호준 코치가 SSG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SSG에선 펄쩍 뛰면서 -구단 사무실 천장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이호준 코치가 유력 감독 후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이호준 코치와 모창민 코치(사진=LG)
이호준 코치와 모창민 코치(사진=LG)

 

LG로선 민감한 문제다. 과거 한국시리즈 진출 팀의 코치가 타 구단 감독으로 ‘영전’한 세 번의 케이스에서 모두 해당 팀이 우승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 번 모두 두산 베어스가 피해자였다. 2017년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한용덕 수석코치의 한화 감독설이 퍼졌고, 두산의 패배로 시리즈가 끝난 뒤 한 감독은 한화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엔 이강철 수석코치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KT 위즈 감독에 선임됐다. 당시 두산은 이 감독 및 KT 구단과 논의해 시리즈 전에 감독 선임 소식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두산은 SK에 2승 4패로 ‘업셋’을 당했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감독은 시리즈가 끝난 뒤 KT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2020년엔 아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투수코치를 교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플레이오프 전인 11월 6일 SK 와이번스가 두산 김원형 투수코치의 감독 선임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두산은 SK와 협의해 김 코치를 일찌감치 보내고, 정재훈 불펜코치를 메인 투수코치로 기용했다. 그해 한국시리즈 역시 두산의 준우승으로 끝났다. 

두산의 우승 실패가 꼭 코치 유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애초 2017년과 2020년엔 2위부터 올라가는 처지라 정규시즌 우승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간 2018년엔 마무리 김강률과 주포 김재환의 부상 악재가 컸다. 하지만 팀이 지닌 모든 자원을 집중해도 모자랄 큰 경기를 앞두고 나온 ‘잡음’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 SSG는 이미 전신인 SK 시절 큰 경기를 앞둔 팀의 코치를 빼간 경험이 있는 팀이다. 불과 3년 만인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경질당한 김원형 감독과 김성용 단장(사진=SSG)
경질당한 김원형 감독과 김성용 단장(사진=SSG)

 

‘이호준 감독설’에 SSG는 “만난 적도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SSG 고위 관계자는 “최종 후보도 아니고 아직 면접도 하기 전이다.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팀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시리즈가 끝난 뒤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LG를 비롯한 야구계에선 이 코치가 실제 감독 제안을 받았고 가장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모든 사태는 SSG의 미숙한 일 처리에서 비롯했다. 우승 감독을 플레이오프 기간에 경질할 때부터 소란은 예고됐다. 이후 SSG는 NC의 지원을 받아 미국 연수 중인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또 한 번 잡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번엔 29년 만의 우승 도전을 앞둔 팀 핵심 코치를 감독 후보로 공개 언급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정작 LG 선수단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지만(모 선수 “당연히 가셔야죠. 훌륭한 감독이 되실 분입니다”) 만에 하나 LG가 우승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 화살은 모조리 새 감독과 SSG 쪽을 향할 것이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SSG 고위 관계자는 이호준 코치를 감독 후보로 거론한 뒤 “아무래도 (한국)시리즈 안에는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감독 선임이 임박했다고 했다. 그런데 논란이 터지자 “한국시리즈 끝난 뒤에 면접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감독 유력’ 보도는 언론사에서 했지만, 그 전에 코치 실명을 언급하고 오해의 소지를 만든 건 SSG 프런트다. 작년 우승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초보적인 실수와 ‘규칙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 이호준 코치든 누구든 새 감독이 와서 이 구단을 믿고 팀을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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