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에이전트 말만 들으면 에이스의 귀환은 가능성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선수 본인이나 주변의 말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조금 다르다. 2023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류현진 얘기다.
일단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한국 복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보라스는 이달 9일 MLB 단장 회의가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취재진에게 “류현진에 대한 메이저리그 팀들의 관심이 매우 크다”면서 “류현진은 내년에도 미국에서 투구할 것이다. 한국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류현진은 지난달 입국 후 기자회견에서 “(마지막에 한화에서 뛰겠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라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모르겠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 시간이 좀 지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능성을 완전히 닫은 보라스와 달리 문을 열어놓은 느낌이다.

경쟁력 여전한 류현진, 1년 1000만불 계약 충분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잔류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미국 현지에서 류현진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발투수로 평가받는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지난달 27일(한국시간) ’나이 30대 중반 이상 FA 10‘을 소개한 콘텐츠에서 류현진을 주목할만한 선수 중 하나로 언급했다. 류현진이 750구 이상 던진 투수 중 보더라인 투구 비율이 47.6%로 MLB 공동 4위였다는 점도 소개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의 뉴욕 메츠 담당기자 팀 브리튼은 류현진을 랜스 린, 마에다 켄타 등 베테랑 FA 선발투수들과 동급으로 묶었다. 브리튼은 린과 마에다가 1년 1,000만 달러에 계약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류현진이 1년 1,100만 달러에 계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린은 브리튼의 예상 거의 그대로 1년 1,100만 달러에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했다. 마에다는 브리튼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2년 2,400만 달러 계약(디트로이트)을 맺었다. 이에 비춰볼 때 비슷한 등급의 류현진 역시 1년 1000만 달러 이상에 계약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브리튼은 이 결과를 두고 “세인트루이스가 류현진 몸값의 기준선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한편 빅리그 단장 출신 분석가 짐 보든은 같은 매체에 실린 칼럼에서 류현진을 FA 랭킹 35위로 평가하면서 인센티브가 포함된 1년 800만 달러에 계약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런 평가들을 종합하면, 류현진의 실제 계약 규모는 최소 연 800만 달러에서 1,100만 달러 사이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로는 연 100억원에서 1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KBO리그에서 한 선수에게 이 정도 연봉을 지불할 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선수가 저 정도 계약을 포기하고 ‘홈 디스카운트’를 선사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올겨울 류현진의 리그 복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게 맞다.
실제 이대호, 추신수, 김광현 등 과거 거물급 선수들의 복귀 사례를 보면 국외 구단에서 제시하는 오퍼와 KBO 구단에서 보장하는 조건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충분한 명분이 마련됐을 때 복귀를 택한 것이 공통점이다. 이대호는 2016시즌 뒤 일본 구단에서 연 50억원 이상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4년 150억원에 롯데로 돌아왔다. 추신수도 2020시즌 뒤 몇몇 빅리그 팀의 제안이 있었지만 연 27억원을 제시한 SSG 랜더스행을 택했다. 당시 추신수와 비슷한 급으로 분류된 타자들의 계약으로 보면 빅리그 잔류시 연 2~300만 달러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광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메이저리그 직장폐쇄가 길어지면서 국내 복귀를 선택한 케이스다. 계속 버티면 충분히 빅리그 계약도 가능했지만 여러 부면을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4년 총액 151억원에 SSG 유니폼을 입었다. 반면 올겨울 류현진이 받을 수 있는 계약과 국내 구단이 줄 수 있는 조건 사이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류현진의 내년 시즌 KBO리그 복귀가 불가능한 시나리오 여겨지는 이유다.

“류현진 미국 잔류, 대도시 빅마켓 구단 오퍼 여부가 관건”
다만 한 가지 변수는 있다. 메이저리그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대도시 구단의 오퍼가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의 류현진이라면 중소도시 스몰 마켓이나 컨텐더와 거리가 먼 팀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녀나 가족의 생활 환경을 고려해 대도시 빅마켓을 선호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포스트시즌 도전이 가능한 팀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만약 중소도시나 약체 팀이라도 마에다가 받은 것과 비슷한 조건(2년 2000만 달러 이상)을 제시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빅마켓 중에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팀이 나오지 않거나, 스몰 마켓의 1년 1000만 달러 규모 오퍼만 있는 상황이라면 류현진으로서도 고민이 될 거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대도시 구단의 오퍼가 없고 중소도시의 오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한화행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일단 한화 구단은 류현진과 관련해 공개적으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물밑에선 류현진의 복귀 레드카펫을 까는 ‘빌드업’이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한화 현장의 한 관계자는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구단 수뇌부가 류현진에 꽤 진심인 것 같다. 손혁 단장을 중심으로 선수와 계속 소통하면서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단장은 지난 8월 직접 토론토를 찾아 류현진과 만났고, 11월초에는 한차례 식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올겨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찾아올 에이스와의 재결합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한화는 올겨울 FA 안치홍 영입을 시작으로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준우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오퍼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또다른 FA 우타 거포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2차 드래프트에선 이상규, 배민서를 지명해 불펜 뎁스를 채운 뒤 SSG 원클럽맨 김강민을 지명하는 파격 선택으로 외야 뎁스까지 강화했다.
이미 문동주와 노시환이라는 미래의 투타 주역을 발굴한 가운데, 대형 선수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내년 시즌을 향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슈퍼 에이스’ 류현진까지 돌아온다면 화룡정점이 될 수 있다. 2022년 친정 SSG 랜더스에 복귀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광현처럼, 돌아온 류현진이 한화를 가을야구로 이끄는 그림이다. 그 시기가 올겨울일지, 아니면 내년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화 에이스 류현진‘을 다시 만날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