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리더십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염경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자신의 리더십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염경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잠실]

“LG 트윈스 팬 여러분, 우승 감독 염경엽입니다.”

LG 트윈스의 우승으로 끝난 한국시리즈 5차전, 우승 뒤풀이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염경엽 감독이 당당하게 외쳤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영광의 순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LG는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게 업셋을 허용해 탈락했다. ‘역시 LG는 안 된다’는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다. 한편 염 감독은 SK에서의 실패 이후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팀으로서나 개인으로서나 큰 좌절의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 LG가 염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편과 아버지를 걱정한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야구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야구인으로서 남은 평판과 명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는 도전이지만 염 감독은 기꺼이 감수했다.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한 간절함이 야구의 신마저 감동시킨 것일까. 간절함으로 하나가 된 염경엽 감독과 LG는 2023시즌 마침내 오랜 우승 ‘한’을 풀었다. 그렇게 염 감독은 선수, 단장,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인물이 됐다. 

한국시리즈 5차전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LG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한국시리즈 5차전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LG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그렇게도 바랐던 감독으로 우승을 해냈습니다. 선수, 단장으로 우승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르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해냈다’였습니다. ‘나도 한번 하는구나’란 생각도 들었죠. 제 마지막 목표였고, 저를 비롯한 모든 감독이 원하는 게 우승이니까요.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면서 하고자 하면, ‘그래도 하늘에서 답을 주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LG 트윈스 감독으로 이룬 우승이란 것도 의미가 있을듯합니다. 12년 전 떠밀리듯 떠났던 팀에 돌아와서 보란 듯이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원래는 10월 말 정도에 육성 총괄 역할을 제안받았어요. 그런데 포스트시즌이 끝나고 상황이 급변한 거죠. 당시 야구단 사장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우승하셔야 한다’였습니다. ‘감독님이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을 다 경험해봤다는 점에 기대하고 있다. 감독님이 준비한 대로 하면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고 바로 계약했습니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그것도 29년 동안 우승 못한 팀 감독을 맡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습니까.

사실 우리 가족들은 엄청 부담을 느꼈어요. 다들 반대를 했죠. 하지만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올 때 ‘감독은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LG에서 우승을 못하면, 나는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우승 못 하는 감독이다. 실력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나 스스로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렇죠. LG의 이 선수 구성 갖고 우승 못하면 내가 능력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감독은 그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보면 야구인으로서 자존심과 커리어를 다 걸고 승부한 셈입니다.

이번에도 못하면 내 야구 인생에서 감독의 길은 접을 생각으로 맡은 거에요. 그리고 LG의 구성을 봤을 때, 제가 그간 맡았던 팀 중에 가장 우승에 근접한 팀이었거든요. 내가 가서 딱 두 가지만 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라면 어떤 것들입니까.

우리는 지난 2년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고도 마지막에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떤 위기가 왔을 때 그걸 극복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로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 사무실 입구에도 ‘두려움과 망설임이 우리 최고의 적이다’라고 적어놨잖아요. 그 두려움과 망설임을 없애는 게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경기에서 한 점의 무거움을 알아야 한다. 한 점을 지고 있을 때 따라가서 역전시키고, 동점일 때 한 점을 내서 이기는 힘. 한 점 이기고 있을 때 그 한 점을 지켜서 이기는 힘. 이 한 점 싸움이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과 망설임을 없앤 비결이 있다면요.

첫번째는 공격적인 야구였습니다. 두려움, 망설임을 없애려면 투수든 타격이든 모든 부분에서 공격적으로 하자고 했어요. 타자들에게는 원하는 공이 오면 세 타자 연속 초구치고 이닝을 끝내도 된다, 공격적으로 치라고 주문했습니다. 또 주자로 나갔을 때 상대가 조금의 빈틈만 보이면 무조건 뛰게 했어요. 시범 경기 때는 정말 미친 듯이 뛰었잖아요. 우리 선수들도 ‘미친 거 아니냐’ 할 정도로 뛰게 시켰으니까. (웃음) 그렇게 해야 팀의 문화, 컬러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LG만의 팀컬러를 입히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게 하면 팬들에게 더 재미있는 야구를 보여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뛰는 야구와 관련해 시즌 초반 논란도 많았습니다. 

말이 많았죠. 그런데 팬들이나 언론에선 죽고 살고만 보는 거잖아요. 제 관점에서는 리더로서 팀 전체에 어떤 컬러를 입히고 문화를 바꿀 것인가를 봐야 했기 때문에 죽고 살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첫 번째 전략의 큰 틀이 두려움과 망설임을 없애는 거였기 때문에 아웃인지 세이프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이너스보다는 얻는 게 훨씬 많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뛰는 걸로 인해 타자에게 주는 플러스 효과도 있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박동원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기뻐하는 염경엽 감독(사진=LG)
박동원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기뻐하는 염경엽 감독(사진=LG)

 

“5월 위기 이겨내며 선수들도, 나도 신뢰와 확신 생겼다”

올시즌을 앞두고 LG 트윈스는 리그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누가 감독해도 우승할 팀’이란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 1위를 하기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우승까지 가는 길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단 4월 경기를 치르면서 제가 세워둔 플랜 A는 다 깨졌습니다. (웃음)

주전 유격수 오지환이 부상으로 빠지는 악재가 있었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케이시 켈리가 제 역할을 못했고, 선발투수로 기대한 김윤식-이민호-강효종이 다 무너졌습니다. 마무리 고우석이 허리를 다쳐서 한 달간 빠졌고, 승리조 투수 이정용과 정우영도 부진했습니다. 

선발투수 4명과 승리조 3명이 사라진 셈이네요.

4월말, 그리고 5월에 접어드는 시기가 제게는 엄청난 위기였고 팀으로서도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에서 제가 자신감을 갖게 된 건 선수들 덕분이었습니다. 

선수들이요.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지 않았으니까요. 불펜 문제는 경기를 치르면서 새로운 필승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함덕주, 유영찬, 박명근, 백승현, 김진성까지 5명으로 새로운 승리조가 형성됐어요. 여기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사용해서 아담 플럿코와 임찬규가 나오는 경기에 무조건 올인했습니다. 나머지 세 경기 중에선 타선이 터지는 경기를 잡으려고 집중했고요. 그렇게 3승 2패를 목표로 전략을 짜고 5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5월 한 달간 16승 1무 6패로 월간 최고 승률(0.727)을 기록했습니다. 

타선이 잘 뒷받침해주고,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생각한 것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서로 간에 신뢰가 생겼죠. 선수들도 제게 자신감을 줬지만 선수들 역시 그런 경기를 치르면서 감독을 믿고 신뢰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렇게 게임을 풀어가면 이길 수 있구나’ ‘팀에서 누군가 빠져도 다 같이 힘을 합치면 되는구나’ 그런 신뢰를 만든 5월이었습니다.

플랜 A가 실패했을 때 꺼낸 플랜 B가 죄다 성공을 거둔 셈인데요. 신기할 정도로 꺼내는 플랜 B마다 전부 성공했습니다.

5월을 잘 넘기면서 안정감이 생겼어요. 6월부터는 플랜 A에 있던 선수들이 하나하나 돌아오면서 흔들렸던 팀이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임찬규가 선발로 들어가고, 이정용이 선발로 가고, 켈리도 자기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찬 신민재도 성공한 플랜 B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건창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만약 서건창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신민재를 써봐야겠다는 플랜 B를 들고 있었습니다. 원래 신민재는 백업 외야수였어요. 그런데 스프링캠프에서 2루수를 시켜보니 움직임이 나쁘지 않더군요. 그래서 특타를 시켜봤는데, 치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빠른 발이라는 자신만의 특별함을 갖고 있잖아요. 잠깐 쓰는 선수가 아니라 길게 보고 키워야 할 선수, 미래 우리 팀 2루수를 할 만한 선수는 신민재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발투수 김윤식에게 시즌 중 캠프를 다시 치르라고 지시한 것도 파격적인 선택이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안되는 선수를 계속 끌고 가봐야 결과는 똑같아요. 이 선수는 한 시즌을 망치게 돼 있어요. 그래서 4월이 지나기 전에 다시 두 달간 캠프를 보낸 거죠. 김윤식과 이민호, 강효종까지 셋을 선발에서 빼고 캠프를 다시 하게 한 겁니다.

한국시리즈 우승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1위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곤 하지만 우승까지 가는 과정이 절대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1선발 아담 플럿코를 배제한 채로 시리즈를 준비했고, 불펜 투수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함덕주도 안 좋았고, 김진성도 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어요. 고우석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 불펜 핵심전력 3명이 좋지 않은 상태로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우려가 2차전을 계기로 싹 사라졌어요.

2차전은 KT 쪽으로 향하는 듯했던 한국시리즈의 방향을 바꾼 분수령이었습니다. 1차전 패배 뒤 2차전 1회부터 4점을 내줬을 때 ‘올해도 LG는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경기를 불펜 7명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그 2차전의 의미가 엄청났죠. 2차전이 이번 한국시리즈의 모든 걸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불펜 8명이 전원 필승조라는 얘기를 했지만 사실 항상 가슴 속에 물음표는 있었어요.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는 완벽히 다른 무대이고, 시리즈에서 이 선수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물음표였다는 거죠. 그런데 2차전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주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어리고 경험 없는 투수를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마운드에 올리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 어린 선수들이 ‘한국시리즈에서도 내 공이 통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죠. 야수들, 선발투수들에게도 우리 불펜이 페넌트레이스 때처럼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겼고요. 상대 팀인 KT에게도 LG 불펜이 세다는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그렇게 되자 3차전부터는 어떻게 됐어요? ‘유영찬이 나가면 다 막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죠. 좋은 기가 오게끔 2차전이 만들어준 거에요. 

예전의 LG라면 1차전에서 지고 2차전 초반에 대량실점했을 때 그대로 무너지면서 시리즈를 내줬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의 LG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중요한 2차전을 잡았고, 3차전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기 흐름을 다시 뒤집어서 이기는 힘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는 공격적인 야구를 한 게 팀의 체질이 바뀌고 문화가 달라진 거죠. 우리 팀이 시즌 때 86승을 했는데 그 가운데 42승이 역전승이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하는 문화, 그걸 선수들이 만든 거잖아요. 감독인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선수들이 움직여서 실행하지 않으면 문화를 바꿀 수가 없는 법입니다. 다행히 우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와 서로에게 확신을 주고 신뢰를 보내면서 만든 문화가 한국시리즈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염경엽 감독과 차명석 단장, 주장 오지환과 구본준 구단주(사진=LG)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염경엽 감독과 차명석 단장, 주장 오지환과 구본준 구단주(사진=LG)

 

“LG엔 좋은 마인드를 갖춘 선수 많아…명문구단, 왕조로 가는 틀”

SK 시절 염경엽 감독은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는 LG 감독이 된 뒤 여러 차례 “내가 교만했고, 그런 내게 하늘이 벌을 내렸다”며 스스로를 비판했다. 20년간의 피나는 노력이 한순간에 비웃음거리가 된 것도 억울했지만, 리더가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더 뼈아팠다.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낸 염 감독은 변화를 다짐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건강을 챙기고, 그때그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코치와 선수 기용, 리더십의 방법과 방향도 조금씩 바꿔나갔다. 물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야구 철학을 빼곡하게 메모하는 습관은 그대로다. 다만 예전엔 공책에 펜으로 썼다면 이제는 휴대폰 노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게 달라진 점이다. 염 감독은 “갖고 있던 매뉴얼을 에버노트에 전부 옮기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매일 업데이트하고 휴대폰과 노트북에 동기화해서 활용한다”고 했다. 그가 살짝 보여준 노트에는 성공하는 조직의 문화와 리더의 조건에 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학이 담겨 있었다.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는 염경엽 감독(사진=LG)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는 염경엽 감독(사진=LG)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SK에서 겪은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와신상담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올해의 우승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실패를 겪은 뒤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SK에서 나름의 과정은 있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정이 다 쓸모없는 게 되고, 20년의 피나는 노력과 과정까지 다 묻혀 버렸습니다. 물론 프런트와 야구인들은 인정해준 부분이 있지만, 팬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 기간을 거치면서 결과로서 과정을 보여주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올해 LG에서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정 표현’입니다. 과거 넥센, SK 시절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기도 하고, 홈런 세리머니도 같이 하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육두문자를 내뱉기도 하는 등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예전엔 나 스스로를 너무 괴롭혔죠. 이전 감독 생활을 돌아봤을 때, 포커페이스가 나를 쓰러지게 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건강해야지만 야구를 할 수 있다. 내 스트레스를 잘 없애야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긍정적인 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시 감독을 하게 되면서는 감정을 숨기지 말자는 쪽으로 매뉴얼을 바꿨어요. 좋을 때 좋다고 표현하고, 역전 홈런을 쳤을 때 같이 기뻐하니까 선수들도 훨씬 더 좋아하고 선수들과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시즌 초에 입으로 욕하는 게 TV 중계화면에 잡혀서 팬들에게 비판도 받았는데, 그 뒤로 다른 건 다 감정대로 표현해도 욕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외에도 달라진 게 있습니까.

있죠. 월요일에는 야구 생각을 안 하는 것, 집에 들어가면 야구 생각을 안 하는 게 달라진 점입니다. 전에는 야구를 집에까지 갖고 가서 계속 고민했어요. 이제는 야구장에서 다음날 타순까지 다 짜놓고 들어갑니다. 아내와도 웬만하면 야구 얘기는 안 합니다. 그냥 우리 집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눠요. 

선수들과 소통은 어떤 식으로 하십니까.

대화를 나눌 장소와 시간까지 구상합니다. 무거운 이야기들은 일대일로 이야기하면 너무 무거워지니까, 연습할 때 자연스럽게 찾아가서 편하게 얘기하는 편입니다. 주제를 구분해서 소통하려고 하는 편이죠. 어떤 건 불러서 하고, 어떤 건 자연스럽게 스쳐 가듯이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대화의 타이밍입니다. 선수들에게 먹힐 수 있는 타이밍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으면 거부감이 들거든요. 심각한 문제일수록 타이밍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선수가 상처받지 않고, 감정선이 맞는다는 거죠.

이번 우승을 통해 명실상부한 ‘명장’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우승은 누구 한 명이 잘나서 되는 게 아닙니다. 선수  한 명 데려왔다고, 누구 하나 데려왔다고 우승하나요? 각자 위치에서 역할이 잘 이뤄져야 우승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우리 팀이 통합 우승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차명석 단장이 구성을 잘 해줬고, 거기에 제가 2% 부족한 부분을 채웠습니다. 여기에 박해민, 오지환, 김현수, 임찬규, 김진성 같은 고참들이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습니다. 지금의 LG는 중간에서 리더들의 역할이 엄청 잘 이뤄지는 팀입니다. 프런트의 리더, 현장 리더, 코칭스태프 리더,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면서 이해하는 게 잘 됐기 때문에 우승이 가능했어요. 이 리더들이 하나로 모여야 원팀이 되는 겁니다. 

잠실구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염경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잠실구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염경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감독으로서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뤘습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LG 프랜차이즈 최다승이 87승인데, 올해 우리 팀이 86승을 했습니다. 사실 더 할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남겨뒀어요. 한꺼번에 다 하지 말고 내년에 하려고 아껴둔 거에요.

그럼 내년 목표가?

89승입니다. (웃음)

내년 시즌 LG가 더 강해질 거라고 보시는군요.

우리 팀 각각의 리더들이 올해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여유도 생겼고, 각자의 위치에서 확신도 생겼을 거에요. 그 확신이 결국 자신감으로 이어질 거고요. 저부터도 자신감이 자만으로 가지 않게 더 겸손해지고, 더 꼼꼼하게 준비할 겁니다. 우리가 올해 부족했던 게 뭔지 방안을 제시하고 채워간다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수들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신뢰가 느껴집니다.

우리 팀에는 좋은 12년 전 갖춘 선수들이 많습니다. 오지환, 김현수 같은 고참들이 자만하지 않고 더 노력할 준비가 돼 있고 그런 문화를 갖고 있어요. 미래의 감독, 지도자감도 많습니다. 이 선수들이 문보경, 문성주, 홍창기 같은 선수들에게 좋은 문화를 이어주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문화가 너무나 잘 형성돼 있습니다. 이게 잘 이어진다면 분명 명문 구단으로 가는 틀이 되고, ‘왕조’를 이룰 수 있는 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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