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대전]
한화 이글스의 길었던 외국인 타자 악몽을 끝낼 ‘스웨거’가 나타났다. 한화 새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가 시범경기 첫날부터 역전 투런포와 강렬한 ‘빠던’으로 대전 만원 관중 앞에서 화끈한 첫 인사를 전했다.
한화가 외국인 타자 부진으로 고통받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 시즌 초반엔 브라이언 오그레디라는 역대 최악의 외국인 타자와 함께했다. 교체 영입한 닉 윌리엄스도 외국인 타자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성적을 남겼다. 외국인 타자들의 잇따른 실패 속에 한화는 팀 타율, 장타율, OPS, 득점 등 거의 모든 타격 지표에서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
2022년 함께한 마이크 터크먼은 뛰어난 수비력과 준수한 공격 스탯을 남겼지만 클러치 능력과 장타가 아쉬웠다. 2021년에는 거포로 기대하고 영입한 라이언 힐리가 부진 끝에 조기 퇴출당했고, 대체 외국인 에르난 페레즈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2020년에도 제라드 호잉의 부진과 브랜든 반즈의 어중간한 활약에 외국인 타자 덕을 전혀 보지 못한 한화다.
그러나 한화의 오랜 외국인 타자 악몽이 올 시즌 새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와 함께 마침내 끝날 조짐이 보인다. 페라자는 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시범경기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역전 2점 홈런 포함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전임자들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1회 첫 타석부터 안타를 날렸다. 삼성 선발 이호성 상대로 때린 땅볼 타구가 2루수를 통과해 우측 외야로 굴러갔다. 2루수 류지혁이 포구를 시도했지만 타구가 워낙 강하고 빨라서 잡지 못했다.
4회에는 홈런포를 날렸다. 2대 2 동점인 가운데 타석에 나온 페라자는 이호성의 가운데 높은 속구를 받아쳐 빨래줄처럼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를 날렸다. 맞은 순간 홈런을 직감한 페라자는 멋진 배트플립과 함께 한참 동안 타구를 응시했고, 천천히 1루를 향해 달렸다. 페라자의 역전 투런에 힘입은 한화는 6대 2로 승리를 거뒀다.

첫 경기부터 홈런을 날리며 입단 당시 한화의 기대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 페라자다. 한화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페라자에게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액인 100만 달러를 꽉 채워 계약했다. 다른 리그, 다른 구단과 경쟁이 붙어 풀개런티 계약이 아니면 영입하기 어려웠다는 후문. 2015년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 당시에도 13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았던 페라자다. 그만큼 선수로서 재능과 자질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시카고 컵스 최상위 유망주로 성장을 거듭한 페라자는 2021년 싱글 A에서 15홈런을, 지난해엔 트리플 A에서 121경기 23홈런을 날리며 파워히터로 거듭났다. 키 175cm로 체구는 작지만, 단단하고 다부진 근육질 몸에서 나오는 파워가 뛰어나다. 이날 경기 후 최원호 감독은 “페라자가 홈런으로 장타 생산 능력이 있음을 확인시켜줬다”며 칭찬했다.
스위치 히터인 페라자는 이날 2개의 안타를 모두 좌타석에서 기록했다. 경기 전 최원호 감독은 “아무래도 우투수가 더 많으니까 좌타석 기회가 더 많았을 거다. 타격 코치들도 좌타석에서 칠 때가 더 잡동작 없이 괜찮다고 하더라”는 평가를 전했다.
다만 원래 오른손잡이라는 점과, 아주 어릴 때부터 스위치 히터를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타석에서의 생산성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트리플 A에서 페라자는 좌투수 상대로 타율 0.331에 OPS 0.988을, 우투수 상대로 0.267에 0.898을 기록해 우타석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남겼다.
외야 수비력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 입단 당시 유격수였던 페라자는 이후 몇 차례 포지션 이동을 거쳐 코너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대부분 우익수와 좌익수로 출전했고, 중견수로는 6경기로 출전이 많지 않았다. 일단 최원호 감독은 페라자를 우익수와 중견수로 기용할 계획. 최 감독은 “볼을 따라다니는 움직임은 생각보다 괜찮다. 송구 능력도 중간 이상은 된다”며 “걱정할 만큼 수비가 안 좋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페라자는 “2020년부터 외야수로 뛰기 시작해, 꾸준히 열심히 훈련했다”면서 “빠르게 (외야 수비에) 적응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경기에서 중견수로 많이 뛰어보진 못했지만, 훈련 때는 중견수 연습을 많이 했다. 조금 어렵지만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번개같은 배트스피드와 강한 파워 외에 또 한가지 페라자의 장점은 열정적이고 쾌활한 성격. 이날도 화끈한 홈런에 이은 배트플립으로 시범경기임에도 관중석을 가득 메운 대전 팬들의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더그아웃에 들어와선 팀원들의 짓궂은 ‘침묵 세리머니’ 장난에 활짝 웃으며 혼자 허공에 대고 하이파이브해 동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페라자에 대해 최원호 감독은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면서 “너무 오버하는 플레이만 자제하도록 코치들에게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페라자는 “새로운 환경에서 팀의 에너지가 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조금씩 배워가면서 맞춰가겠다. (오버하지 않게) 조절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배트플립에 대해선 “홈런이 나올 때마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하겠다”는 말로 많은 홈런과 그만큼 화려한 쇼맨십을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