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대전]
“원래는 6인 로테이션이 제 로망이거든요.”
9일 대전 시범경기 개막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은 “감독대행 시절부터 6선발 로테이션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선수 시절에도 5일 쉬고 던졌다 4일 쉬었다가 하니까 (등판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서 어렵더라. 우리 야구는 월요일에 휴식일이 있으니까, 6명으로 선발진을 꾸리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최 감독의 말이다.
그러나 최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은 2020년 한화 투수진을 보면 6선발이 꿈같은 얘기였음을 알게 된다. 당시 한화 선발진에 규정이닝 투수는 워윅 서폴드 하나뿐이었고, 100이닝을 넘긴 투수도 서폴드와 장시환, 김민우까지 셋밖에 없었다. 6선발은커녕 선발 다섯 자리 채우기도 버거운 게 당시 최하위 한화의 전력이었다.
올 시즌에는 얘기가 다르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전격 복귀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한 한화다. 재계약한 외국인 투수 2명과 지난해 급성장한 문동주, 여기에 류현진이 더해져 탄탄한 4인 로테이션을 구축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개막전 선발투수였던 김민우가 이제는 5선발 경쟁을 할 정도로 선발진이 풍성해졌다.
류현진은 명불허전이다. 7일 청백전에서도 완벽한 제구와 경기 운영으로 올시즌 리그 지배를 예고했다. 외국인 투수들의 준비 과정도 순조롭다. 리카르도 산체스는 9일 시범경기에서 최고구속 151km/h 위력투를 던졌다. 경기 초반 낯선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 존에 잠시 흔들렸지만 금세 안정을 찾았고 1회 2실점 이후론 안정적인 투구를 펼쳤다. 펠릭스 페냐도 오늘(11일) 시범경기 KIA전을 통해 컨디션을 점검할 예정이다.
7일 청백전에서 다소 아쉬운 투구를 보인 문동주도 몸 상태나 준비 과정엔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 당시 최고구속 148km/h를 기록한 문동주에 대해 최원호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몸이 덜 올라왔고 날도 추워서 조금 (페이스를) 조절한 것 같다. 문동주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늦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100이면 문동주는 아직 7, 80 정도”라며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다. 시범경기를 통해 투구 수를 끌어올리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동주는 11일 KIA전에서 선발 류현진에 이어 등판해 긴 이닝을 던질 예정이다.

4선발이 확정된 가운데 남은 건 김민우, 황준서, 이태양, 김기중이 벌이는 5선발 경쟁이다. 이 가운데 신인 황준서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지난 시즌 한화의 주축 선발 자원이었다. 최근 4년간 한화 투수진에서 최다 경기(94선발)에 선발로 나선 김민우, 지난해 12경기에 선발 등판한 이태양, 6경기 선발로 나왔던 김기중이 5선발 자리를 놓고 겨룬다는 데서 한화 선발진의 달라진 높이가 나타난다.
현 시점에서 가장 앞서 가는 주자는 원조 에이스 김민우다. 지난해 부상과 부침을 겪은 김민우는 올시즌 반등을 위해 겨우내 구슬땀을 흘렸다. 자비를 들여 미국 시애틀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에서 개인 훈련을 소화했고, 그 결과는 7일 청백전 3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돌아왔다. 이날 김민우는 한결 가벼워진 모습으로 등장해 최고 144km/h의 위력적인 공을 뿌렸다.
최원호 감독도 “다행히 김민우가 좋은 모습이다. 민우가 좋으면 민우를 써야 한다. 시범경기에서도 계속 좋았으면 한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고질적인 투구 템포, 슬라이드 스텝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줬다. 최 감독은 “작년부터 계속 퀵모션으로만 던지고 있다. 본인도 (투구폼을) 빠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신경 쓰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1라운드 신인 황준서도 10일 시범경기 삼성전을 통해 잠재력을인정받았다. 황준서는 3이닝 동안 5안타로 1점을 내주긴 했지만 볼넷 하나만 내주고 삼진은 4개를 잡아내며 호투했다. 최고구속은 146km/h를 기록했고, 평균구속도 142로 준수했다. 특히 결정구로 선보인 스플리터는 1군 타자들 상대로도 충분히 경쟁력있는 필살기란 평가다.

이 정도 투수진이라면 감독의 로망인 ‘6인 선발’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최 감독은 “외국인 투수들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밝혔다. 최 감독은 “대행 시절에도 보면 외국인 투수들이 반대했다. 계약 조건상 투구이닝 등에 세부 옵션이 있다 보니, 주 1회 등판에 상당히 부정적이더라. 현실은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엔트리 한 자리를 선발투수로 채워야 하는 것도 문제. 그러려면 불펜투수를 줄이거나 야수를 줄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대신 최 감독은 5선발 경쟁에서 선택받지 못한 선수를 스윙맨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시즌 초반 류현진, 문동주가 많은 투구 수를 던지기 어려운 것과도 관련이 있다. 시즌 준비과정이 다소 늦다보니 투구 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개막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 최 감독은 ”(둘은) 80구 전후 정도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4월 한 달은 어느 정도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가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선발과 불펜 사이에서 비는 이닝을 채워줄 스윙맨의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 최 감독은 “불펜을 셋업맨으로만 구성하면 불펜투수들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서너 명 정도는 스윙맨 역할을 할 투수들을 넣어야 한다”며 “불펜진의 절반은 상황에 따라 길게 던질 수 있는 투수들로 구성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산술적으로 6인 선발도 가능할 만큼, 탄탄한 마운드를 보유한 팀이라서 가능한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