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혜성특급' 김혜성이 오타니 쇼헤이의 역사적 순간에 함께했다. 토미존 수술 후 641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오타니의 첫 번째 상대 타자로 김혜성이 나섰다.
오타니는 5월 26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와의 경기를 앞두고 시티필드에서 약 2년 만에 실전 타자를 상대로 공을 던졌다. LA 에인절스 시절인 2023년 8월 23일 신시내티전 이후 첫 라이브 피칭이자,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순간이다.
19개월 전 커리어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은 뒤 타격에만 전념해온 오타니에게 이날은 투수 복귀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였다. 수십 명의 일본 기자들이 몰려와 투타니의 복귀에 주목했고, 다저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관계자들까지 총출동해 오타니의 피칭을 숨죽여 지켜봤다.
6구의 연습구를 던진 오타니는 김혜성을 시작으로 신인 포수 달튼 러싱, 코치 J.T. 왓킨스 등 3명의 타자를 상대로 총 22구를 던졌다. 단순히 속구만 던진 게 아니라 슬라이더, 커브 등 자신이 보유한 모든 구종을 섞어가며 실전 수준의 진지함으로 임했다.
첫 타석에서 김혜성은 5구째를 강하게 받아쳐 오타니 방향으로 날카로운 땅볼을 보냈다. 오타니가 이를 깔끔하게 잡아낸 뒤 1루로 송구하는 시늉을 하자 지켜보던 동료들에게서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두 번째 타석도 실전을 방불케 했다. 김혜성은 라이브 BP라고 해서 대충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힘 있는 스윙으로 우익선상 쪽으로 향하는 강한 라인드라이브를 날렸다. 실전이라면 2루타가 될 법한 타구였다. 이를 지켜본 오타니는 "테오스카(에르난데스 우익수)가 잡을 수 있었을까?"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혜성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두 타자는 오타니의 위력을 실감했다. 35세 전직 마이너리거 왓킨스는 삼진으로 돌아섰고, 촉망받는 신인 러싱도 변화구에 속아 헛스윙을 했다. 오타니는 마지막에 왓킨스를 5구 볼넷으로 내보내며 라이브 세션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오타니는 수술 여파로 투수 역할을 완전히 봉인한 채 타자에만 전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54홈런 59도루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50-50 클럽에 입성하며 만장일치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10년 7억 달러(약 9800억원)라는 천문학적 계약금의 가치를 타자로만 뛰면서도 충분히 입증해낸 것이다.
올 시즌 역시 타격 면에서는 여전히 공포의 존재다. 25일 현재 17홈런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고, 타율 .304에 OPS 1.053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52득점으로 메이저리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앞으로 투수로의 복귀까지 성공한다면 명실상부한 '완전체 오타니'가 탄생하는 셈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라이브 피칭을 앞두고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복귀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며 "당연히 기대가 크다. 커맨드를 찾는 것이 관건이고, 오타니가 건강하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주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시뮬레이션 게임이 예정돼 있다. 이때도 김혜성과 러싱이 타석에 들어설 계획이다. 다만 로버츠 감독은 "올스타 브레이크(7월 중순) 이전 실전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성급한 복귀보다는 단계적 접근을 강조했다.
김혜성과 오타니 사이에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2023년 WBC 준결승에서 한일 양국을 대표해 맞붙었던 적수에서 이제는 한솥밥을 먹는 동료가 됐다. 김혜성의 다저스 입단 당시 오타니가 직접 SNS에서 팔로우하며 환영 의사를 표한 것도 화제였다. 김혜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더그아웃에서 많은 조언을 해준다"며 고마워해왔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오타니의 투수 복귀를 돕는 역할을 자처했다.
641일간의 긴 터널 끝이 보인다. 다저스 블루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 복귀를 꿈꾸는 오타니가 투타 겸업이라는 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도전을 다시 시작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 여정의 첫걸음에 김혜성이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