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축제의 도시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기념 퍼레이드가 한창이던 27일(한국시간) 오후, 차량이 행인들을 향해 고의로 돌진하는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53세 백인 남성을 긴급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참사는 26일 오후 6시경(현지시간) 리버풀 시내 워터 스트리트에서 일어났다. 로열 라이버 빌딩과 시청에서 불과 수 미터 떨어진 도심 한복판으로, 수천 명의 리버풀 팬들이 35년 만의 리그 우승을 축하하며 거리를 가득 메운 바로 그 현장이었다. 메인 퍼레이드가 끝나고 도로가 재개방된 직후에 사건이 터졌다.
현장을 목격한 레스 윈스퍼(55)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사람들이 차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창문이 깨졌고 운전자가 당황해서 액셀을 밟았다. 그 후 누군가를 치었고 그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나머지 사람들을 들이받으며 돌진했다. 이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윈스퍼는 첫 번째 피해자가 충돌로 "약 20피트(6m) 높이까지" 공중으로 날아갔다고 전했다.
그의 친구 크레이그 스튜어드(52)는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울고, 아이들이 울면서 떨고 있었다"며 "운전자가 실수로 누군가를 친 다음 액셀을 밟은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본 것 중 최악이었다"라고 충격을 드러냈다. 두 목격자 모두 사건이 20~30초간 지속됐다고 증언했다.
솔리헐에서 온 해리 라시드(48)는 아내, 두 어린 딸과 함께 퍼레이드를 관람하다 충돌을 목격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회색 승합차가 우리 오른쪽에서 나타나 옆에 있던 사람들을 들이받았다"면서 "매우 빨랐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차 보닛에서 튕겨 나가는 '팝팝팝' 소리만 들렸다. 군중들이 차 창문을 부수려고 달려들었지만 다시 액셀을 밟고 나머지 사람들을 들이받으며 계속 나아갔다. 사람들을 깔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끔찍한 순간을 묘사했다.
BBC 기자 맷 콜은 가족과 함께 퍼레이드에 참석했다가 사건을 목격한 뒤 "앞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짙은 파란색 차가 군중을 뚫고 왔다. 멈출 기미가 전혀 없었다"며 "함께 있던 딸을 잡아서 옆으로 피했는데 정말 몇 인치 차이로 우리를 비켜갔다"고 전했다.
레스터에서 온 소니 싱(40)은 9세, 13세 두 아들과 함께 축하 행사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십대와 수십 명이 '울면서 분노하며' 내 옆을 지나 달려가는 걸 봤다"며 "15세 정도 되는 소년이 다리를 붙잡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참상을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한 목격자는 차량이 후진한 뒤 "믿을 수 없을 만큼 의도적으로 보이는" 가속으로 군중을 향해 돌진했다고 증언했다. 라시드 역시 "명백히 고의적으로 보였다"며 "무고한 사람들, 그냥 퍼레이드를 즐기러 온 팬들이었다"고 분노했다.

ESPN에 따르면 머지사이드 경찰은 체포된 남성이 53세 백인 영국인으로 리버풀 지역 거주자라고 확인했다. 가디언은 이번 수사를 머지사이드 경찰 주도 하에 노스웨스트 테러방지팀이 지원하고 있으며, 수사관들이 충돌 배후의 동기를 파악하려 한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약 30명이 부상이나 쇼크로 리버풀 시청 맞은편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세인트 존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일부는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리버풀의 장면들은 끔찍하다. 부상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을 생각하고 있다"며 "이 충격적인 사건에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대응한 경찰과 응급 서비스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리버풀 구단은 "오늘 저녁 트로피 퍼레이드 막바지에 워터 스트리트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머지사이드 경찰과 직접 연락하고 있다"며 "이 심각한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ESPN은 이번 퍼레이드가 리버풀에겐 35년 만에 영국 1부리그 우승을 온전히 축하할 기회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20년 우승 당시에는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됐고 퍼레이드도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온 환희의 축제는 한순간에 악몽으로 바뀌었고, 영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