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여자골프계에서 신예의 등장은 늘 조심스럽다. 아마추어 시절 화려했던 선수들도 막상 프로 무대에선 고전하기 일쑤다. 적응 기간이라는 명목 하에 1~2년은 족히 기다려줘야 한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런데 21세 영국 소녀가 이런 관례를 단숨에 뒤엎었다.
로티 우드(영국)가 7월 2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던도날드 링크스에서 열린 ISPS 한다 여자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프로 데뷔전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5버디 1보기를 기록해 68타를 쳤고, 총합 21언더파로 김효주(한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LPGA 투어 회원 데뷔전에서 우승한 것은 역사상 세 번째 기록이다.
사실 우드의 이름은 이미 골프계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달 초 아마추어 신분으로 KPMG 여자 아일랜드 오픈에서 우승했고, 이어진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메이저 우승을 1타 차로 놓쳤다. 두 대회의 성과로 LPGA 투어 시드를 획득한 우드는 곧바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프로 첫 무대에서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게 우연이나 행운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최종 라운드는 2타 차 선두로 출발한 우드와 추격조 간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우드는 2번홀 6피트 버디 퍼트로 기선을 제압했고, 파5 3번홀에서도 버디를 추가했다. 하지만 앞 조의 김효주도 만만치 않았다. 5번홀부터 3연속 버디를 쏟아내며 맹추격했다. 8번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후반 10, 11번홀 연속 버디로 우드와 어느새 동률을 이뤘다.
이 순간이 우드에겐 진짜 시험대였다. 13번홀에서 버디로 다시 앞서나간 우드는 파5 14번홀에서 8피트 버디 퍼트를 차분히 넣으며 2타 차를 벌렸다. 김효주가 14, 15, 16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주춤한 사이, 우드는 16번홀에서 티샷을 러프에 빠뜨리고 보기를 범했지만 여전히 2타 차 우위를 지켰다.
마지막 두 홀에서 우드는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신중함을 보였다. 17번홀에서 파를 지킨 뒤 파5 18번홀에서도 욕심내지 않고 레이업을 선택했다. 웨지로 2피트까지 붙인 뒤 버디로 마무리하며 기념비적인 승리를 완성했다. 4일간 67-65-67-68타를 기록했는데, 매 라운드 최소 5개의 버디를 쏟아냈고 주중 보기는 단 3개에 그쳤다는 수치가 이번 우승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우드는 "꽤 좋은 결과인 것 같다"는 말로 영국인답게 절제된 소감을 남겼다. "첫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몸 상태가 좋긴 했지만, 기껏해야 상위권 다툼 정도 할 수 있길 바랐다. 그래도 오늘은 정말 안정적으로 쳤다"고 덧붙였다.
김효주와 박빙 승부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비결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김효주가 따라잡았다는 걸 몰랐다. 스코어보드가 많지 않아서 상황이 팽팽하다는 정도만 느꼈다. 후반 들어 버디 2개를 연달아 잡고 나서야 좀 앞서는구나 싶었다"는 설명이다.
링크스 코스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기우에 그쳤다. 우드는 "작년 AIG 여자 오픈 이후 링크스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는 소감을 남겼다. 실제로 우드는 4일간 링크스 특유의 바람과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흔들리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우드는 서리주 팜햄 출신으로 2022년 플로리다 주립대에 입학했다. 골프계의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우승과 NCAA 준우승으로 화제를 모았고, 여자 오픈에서는 상위권 피니시와 함께 로 아마추어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연속 우승이 나온 셈이다.

이번 우승으로 우드는 LPGA 투어 역사상 12번째 영국인 우승자가 됐다. 2018년 고진영 이후 LPGA 회원 자격으로 데뷔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우드가 처음이다. 로즈 장이 2023년 미즈호 아메리카스 오픈에서 프로 전향 후 첫 대회 우승을 했지만, 당시엔 아직 투어 카드가 없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김효주는 우드와 같은 68타로 2위에 올랐고, 김세영(한국)과 스페인의 훌리아 로페스 라미레스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세계 1위 넬리 코다는 5위에 머물렀다. 우드와 마지막 조에서 함께 플레이한 나나 코에르츠 매드슨(덴마크)은 18번홀에서 트리플보기를 범하며 6위로 밀려났다. 영국 선수들로는 앨리스 휴슨이 주말 연속 69타로 공동 10위에 올랐고, 레오나 맥과이어(아일랜드)는 공동 16위, 찰리 헐은 공동 21위를 기록했다.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우드는 다음 주 웨일스 로열 포스카울에서 열리는 AIG 여자 오픈에서도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우드가 메이저 대회에서도 통할지, 연속 우승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1세 영국 신예에게 이번 우승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