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운동부 폭력 사건으로 논란에 휩싸인 일본 고료고등학교가 결국 제107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출전을 포기했다. 1회전을 치른 뒤 내린 뒤늦은 결단이었다.
고료고는 10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고시엔 출전 기권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학교 측은 "부원 간 폭력을 동반한 부적절한 행위뿐만 아니라 감독과 코치들로부터 폭력과 폭언을 받았다는 복수의 정보가 SNS 등에서 다뤄지고 있다"며 "이러한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지도체제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도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리 마사카즈 교장은 이날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권 결정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등하교 시 비방중상을 받거나 쫓겨다니고, 기숙사 폭파 예고까지 나오는 등 SNS상에서 소란이 일고 있다"며 "교장으로서 학생과 교직원,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고료고의 기권으로 14일 예정됐던 2회전 상대 츠다학원(미에)은 부전승으로 3회전에 진출하게 됐다. 대회를 주관하는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과 아사히신문사는 "이런 사태가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학교의 판단을 받아들였다"며 "폭력과 괴롭힘, 부조리한 상하관계 박멸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료고의 뒤늦은 기권 결정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갑다. SNS에서는 '고료 기권', '고료고', '출전 기권', '판단이 늦다' 등의 단어가 트렌드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연맹과 고료 고교 모두 판단이 늦다. 모든 게 뒷북이다. 괴롭힘에 관여하지 않은 선수들은 체면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피해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회전에서 고료고에 1대 3로 패한 아사히카와시호고(키타홋카이도)에 대한 동정론도 확산되고 있다. "고료고가 기권할 거라면 아사히카와시호를 부활시켜 달라", "가해자 학생까지 출전해서 경기를 이겨놓고 다음 경기를 기권하는 건 아사히카와 선수들에게 너무 안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고료고는 지난 7일 1회전에서 아사히카와시호를 꺾고 2회전 진출을 확정했다. 당시 경기 후 응원석에 인사하는 고료고 선수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3일 만에 갑작스러운 기권 발표로 고시엔 무대를 떠나게 됐다.
고료고를 둘러싼 폭력 사건은 올해 1월 말 1학년 부원이 여러 2학년 부원들로부터 집단폭력을 당한 것이 발단이었다. 피해 학생은 이후 전학을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3월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으로부터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지만 고시엔 출전을 강행해 비판을 받아왔다.
2005년 메이토쿠기주쿠고가 선수들의 부정행위 발각 후 고시엔 출전을 포기한 사례와 달리, 고료고는 사전 보고와 처분이 완료됐다는 이유로 출전을 밀어붙였다. 메이토쿠기주쿠의 경우 연맹에 사건 보고가 되지 않았던 것과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여론의 압박과 학생 안전 우려 앞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대회 도중 기권은 드문 일로, 청소년 스포츠의 축제로 여겨지는 고시엔이 학교 폭력 문제로 얼룩진 만큼 일본 고교야구계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