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프리미어리그가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난제에 봉착했다.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한 재정규정 위반 혐의 115건이 8개월째 결론 없이 표류하고 있다.
오너십 자본 주입을 스폰서십 수익으로 위장하고, 선수와 감독에게 지급한 급여·보너스를 숨기고,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혐의다. 리처드 마스터스 프리미어리그 CEO가 15일(한국시간) 새 시즌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거듭 당부했지만, 답답함만 커져간다.
이 모든 것이 침묵의 정치학 때문이다. 마스터스 CEO는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프리미어리그 규정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프리미어리그의 권위를 갉아먹고 있다.
"정말 논평할 수 없으며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마스터스는 말했다. "규정이 매우 명확하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혐의와 기소가 발표된 시점부터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그 과정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침묵은 공백을 만들고, 그 공백은 추측으로 채워진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올해 1월부터 매달 '판결 임박'이라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독립재판부 외에는 누구도 정확한 날짜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맨시티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1억8000만 파운드를 쓴 것도 저마다 다르게 해석됐다. 결백하다는 확신의 표현인가, 아니면 처벌 전 마지막 승부수인가.

침묵의 가장 큰 문제는 권위의 공동화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여러 구단이 맨시티 사건 처리 방식에 비공식적으로 불만을 표명하고 있으며, 만약 맨시티가 무죄로 판명되면 마스터스가 사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리그 최고 책임자가 자신이 주도한 사건의 결과에 따라 거취가 결정될 지도 모르는 처지다.
"독립패널이 독립적으로 선정됐다"며 "그들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고, 과정과 시기도 그들이 결정한다"고 마스터스는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은 책임 회피로 들릴 뿐이다. 프리미어리그가 기소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침묵은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6월 주주총회에서 맨시티는 몇 시간 동안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침묵 대 침묵의 대치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법정에서 날아다니는 소송 서류가 펄럭이는 효과음 뿐이다.
마스터스는 "언젠가 판결이 내려지면 그것은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설령 판결이 나온다 해도 상소는 불가피하다. 시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결국 프리미어리그는 스스로 만든 침묵의 감옥에 갇혔다. 규정상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손상을 입고 있다. 투명성이 신뢰의 기반인 시대에 불투명함은 의혹만 키울 뿐이다.
2025-26 시즌이 시작됐지만 세간의 눈은 경기장이 아니라 법정으로 향한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프리미어리그의 권위는 조금씩 무너져간다. 마스터스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정작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는 것은 프리미어리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