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을 잃었지만 더 강해져서 돌아온 패트릭 코펜(사진=MiLB.com 홈페이지)
한쪽 눈을 잃었지만 더 강해져서 돌아온 패트릭 코펜(사진=MiLB.com 홈페이지)

 

[스포츠춘추]

야구선수에게 부상은 숙명이다. 어깨가 나가고, 팔꿈치가 망가지고, 무릎이 삐끗한다. 그런 부상들과 맞서며 선수들은 성장한다. 하지만 패트릭 코펜이 겪은 일은 차원이 달랐다. 라인드라이브 한 방에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것도 프로 2년차, 한창 꽃피울 나이에 말이다.

스포츠 전문지 디 애슬레틱이 20일 자세히 소개한 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우완 투수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에 절망할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끔찍한 사고를 당한 지 1년, 코펜은 하이 싱글 A를 거쳐 더블 A까지 승격하며 부상 전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운명을 바꾼 건 2024년 8월 20일 던진 커터 한 개였다. 미시간주 미들랜드, 그레이트레이크스와 위스콘신 팀버래틀러스의 경기. 3회 1사 1루 상황에서 코펜이 던진 91마일 커터가 제대로 꺾이지 않았다. 더블플레이를 노렸던 공이 쿠퍼 프랫의 배트에 정통으로 맞았다.

"공이 내 쪽으로 오는 걸 봤지만 피할 시간이 없었다." 코펜이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들려준 회상이다. 두 번의 충격음이 들렸다. 배트에서 나는 소리, 그리고 얼굴에 맞는 소리. 옷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걸 보고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70km나 떨어진 미시간대 병원에서 밤새 응급수술을 받았다. 안와골 수술은 성공했지만 우안 망막 손상이 너무 심했다. 의사들은 시력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23세 청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동안 야구장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느낄 법 한데, 코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수술 2주 뒤 야구장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마운드에 올라가 홈플레이트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자 견제하는 방법을 바꿔야겠다."

야구를 포기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구급차에서 보낸 30분 정도를 제외하면 언젠가 다시 마운드에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저스 관계자들도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쪽 눈을 잃었지만 더 강해져서 돌아온 패트릭 코펜(사진=MiLB.com 홈페이지)
한쪽 눈을 잃었지만 더 강해져서 돌아온 패트릭 코펜(사진=MiLB.com 홈페이지)

코펜은 여자친구 메이시 맥엘레이니와 함께 독특한 재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뭉친 양말을 던지며 거리 감각을 기르는 훈련을 했다. 테니스공, 탁구공 순으로 단계를 높여갔다. 의사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플라이오메트릭 운동도 병행했다.

부상 당시 영상을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트라우마 극복 때문이 아니라 "왜 그렇게 세게 맞았는지" 분석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커터 그립을 개선했다. 엄청난 멘탈이다.

올 시즌 성적은 부상 전보다 오히려 좋다. 하이에이에서 10경기 48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2.25, 77개 삼진을 기록했다. 더블 A로 승격한 뒤에도 12경기에서 평균자책 3.52를 유지하고 있다. 최고 99마일(159km/h) 속구와 슬라이더, 사고의 원인이 됐던 커터가 주 무기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물을 컵에 따르거나 카드를 계산원에게서 받거나 문고리를 잡는 일상적인 동작이 달라졌다. 야구에서는 2루 주자 견제가 가장 큰 문제다. 우측 시야가 없어 고개를 완전히 돌려야 한다. 하지만 홈플레이트를 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왼쪽 눈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브랜든 곰스 다저스 단장은 "부상이 빅리그 투수가 되겠다는 그의 목표를 바꾸지 못했다. 정말 감동적"이라고 평가했다. 데이비드 앤더슨 전 투수코치는 "15년간 빅리거로 뛰든, 하루만 뛰든, 그는 후회 없이 모든 걸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봄 코펜과 맥엘레이니는 약혼했다. 부상을 목격했던 약혼녀는 코펜의 마운드 복귀도 함께 지켜봤다. 4월 홈 개막전에서 코펜은 선발로 나서 3.2이닝 무안타 9삼진의 완벽한 복귀전을 치렀다.

"이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성장했다"고 코펜은 말했다. "거의 죽을 뻔한 상황을 극복하고 돌아와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전히 야구장은 위험이 가득한 곳이다. 올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복귀 첫 실전에 나선 코펜은 또다시 라인드라이브를 맞았다. 이번엔 테오스카 에르난데스가 친 공이 다리를 강타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뒤 며칠간 비슷한 사고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나에게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지 몰랐다"고 코펜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다면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꿈꿔왔던 일이라면 그건 노력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관점은 바뀌었지만 목표는 그대로다. "내 생각엔 야구장에서 나쁜 시간이란 없다"는 코펜의 말이 그의 철학을 대변한다. 한쪽 눈을 잃었지만 꿈만큼은 더욱 선명해진 청년이다. 그의 이야기는 야구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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