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도박꾼' 피트 로즈에 이어 '약쟁이' 로저 클레멘스까지 명예의 전당에 밀어넣으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의 채드 제닝스 기자는 26일(한국시간)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로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확신하지만, 사이영상 7회 수상자를 실제로 쿠퍼스타운에 입성시키려면 커미셔너나 야구 기자들, 혹은 일반 야구 팬들을 설득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닝스 기자는 "클레멘스를 즉시 입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정해진 절차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주말에 클레멘스 부자와 함께 골프를 친 뒤 클레멘스를 명예의 전당에 "지금 당장" 넣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쿠퍼스타운의 문턱은 골프 멤버십 가입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클레멘스의 운명은 올겨울 아직 정해지지 않은 16명이 결정한다. 이들은 명예의 전당의 '현대 야구 시대 선수 위원회'에서 표를 던질 예정이다. 하지만 우선 클레멘스가 그 투표 대상자 명단에 올라야 한다. 2022년 마지막으로 투표에 올랐을 때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는 미국야구기자협회에서 10년간 기회를 얻었지만 선출되지 못한 선수들을 다시 검토하는 기구다. 현대 시대 선수 투표는 3년마다 실시되며, 올 12월에 다시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투표 대상자는 1980년 이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8명의 선수들로 구성된다.
클레멘스와 함께 거론되는 이름들은 화려하다. 배리 본즈, 키스 헤르난데스, 돈 매팅리, 케니 로프턴, 데일 머피, 루 휘테커, 커트 실링 등이 포함될 수 있다. 12월에 투표할 16인 위원회는 투표 명단이 결정된 후에야 확정된다.
클레멘스에게는 씁쓸한 기억이 있다. 2022년 현대 시대 선수 투표에 올랐지만 선출은커녕 근접하지도 못했다. 제닝스 기자는 "그는 야구 기자들로부터 받았던 것보다도 베테랑 위원회에서 더 적은 지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수치가 이를 보여준다. 클레멘스는 미국야구기자협회 투표 마지막 해에 65.2%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베테랑 위원회 투표 첫 등장에서는 25% 미만의 득표율을 얻었다. 선출되려면 75%의 득표율, 즉 16명 중 12표가 필요한데 4표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베테랑 위원회는 보통 전직 선수 6~7명, 구단 임원 6~7명, 그리고 미국야구기자협회 회원 3명으로 구성된다. 16명의 위원회 멤버 각자는 3명의 선수에게만 투표할 수 있다. 명예의 전당 웹사이트에 따르면 "위원회는 모든 후보자를 고려해야 하며 투표는 개인의 기록, 능력, 성실성, 스포츠맨십, 인격, 그리고 경기에 대한 기여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2022년 위원회 구성을 보면 클레멘스에게 불리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 의혹이 있는 선수와는 계약하지 않겠다고 한때 말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임원 켄 윌리엄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테로이드 사용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세 명의 명예의 전당 선수들도 있었다. 프랭크 토마스, 잭 모리스, 라인 샌드버그다.
토마스는 2017년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약물 사용자들이)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연락해서 '나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지는 말라. 자신이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모리스 역시 2011년 자신의 선출 전에 원칙을 세웠다. "모든 기자가 한 사람을 선출할 때 고려해야 하는 명예의 전당에 대한 큰 정의가 있다. 그 정의의 일부는 그들이 경기의 성실성을 지켰느냐는 것이다. 속임수를 쓰면서는 경기의 성실성을 지킬 수 없다."
그는 이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겠는가?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라고? 그것은 좋은 메시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정서는 클린하게 경기를 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 많은 선수가 공유하고 있다. 그들에게 스테로이드는 야구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오점이다.
클레멘스가 위대한 투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경기력 향상 약물과의 연관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클레멘스는 오랫동안 스테로이드 복용을 부인해왔지만, 미첼 리포트와 전 트레이너 브라이언 맥나미에 의해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자로 강하게 의심받고 있다.
트럼프의 개입이 예상치 못한 변수이긴 하지만, 그의 의견이 일부 명예의 전당 투표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16인 위원회의 75% 동의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하고, 성실성과 인격을 중시하는 명예의 전당의 전통적 가치관과도 맞서야 한다. 클레멘스의 '대통령 찬스'가 쿠퍼스타운까지 통할지는 12월 투표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