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맨유(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맨유(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스포츠춘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잉글랜드 4부리그 그림즈비 타운에게 패하며 클럽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굴욕을 당했다. 세계 최고 명문구단이 관중석 9000석짜리 소규모 구장에서 무릎을 꿇은 충격적인 밤이었다.

28일(한국시간) 그림즈비 홈구장 블런델 파크에서 벌어진 카라바오컵 2라운드 경기는 단순한 패배를 넘어 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형 업셋으로 기록됐다. 정규시간 2대 2 무승부 후 진행된 13라운드 승부차기에서 브라이언 음뵈모의 크로스바 강타로 맨유의 컵 여정이 조기 마감된 순간, 9000명의 그림즈비 팬들이 피치로 쏟아져 나오며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이번 참사가 얼마나 충격적인지는 양 팀의 격차를 보면 명확해진다. 맨유는 올여름만 공격진 보강에 2억 파운드(약 3686억원)를 쏟아부었다. 음뵈모, 마테우스 쿠냐, 베냐민 셰슈코가 그 주인공들이다. 반면 그림즈비는 리그 2에서 4위팀으로, 이날 경기 라인업은 자체 아카데미 출신들과 페로 제도 국가대표로 채웠다.

맨유 주전 한 명의 주급이 그림즈비 전체 팀 연봉보다 많은 상황에서 벌어진 이 결과는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현대판이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림즈비의 두 번째 골을 넣은 타이렐 워런이 맨유 유소년 출신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키워놓고 내보낸 선수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아모림의 경기 후 인터뷰(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아모림의 경기 후 인터뷰(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루벤 아모림 감독에게는 부임 후 최악의 악몽이었다. 아모림은 경기 내내 거의 앉지도 못하면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쏟아냈지만, 4부리그 상대로 전술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만 드러냈다. 전반전 내내 홈 관중석에서는 '아침에 해고될 거야(Sacked in the morning)' 합창이 터져 나왔고, 아모림은 고개를 돌리며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 굴욕적인 것은 승부차기 상황에서의 모습이었다. 아모림은 자신의 팀이 차는 승부차기를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세계 최고 명문구단의 감독이 4부리그 팀과의 승부차기에서 보인 이런 모습은 전 세계 축구팬들의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맨유의 굴욕을 상징하는 장면은 승부차기에서 나왔다. 올여름 영입한 거액의 공격수들이 줄줄이 실축하며 팀을 나락으로 끌어들였다. 쿠냐는 밋밋한 슛으로 골키퍼 크리스티 핌에게 막혔고, 음뵈모는 결정적 순간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무려 2억 파운드짜리 공격진이 4부리그 골키퍼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것이다.

특히 셰슈코가 승부차기 순서에서 10번째로 밀려난 것은 아모림의 혼란스러운 상황 판단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로리 휘트웰 기자는 "아모림의 새로운 2억 파운드 공격진이 승부차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며 "이는 그의 호화 전력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드러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드레 오나나의 골키핑도 가히 재앙 수준이었다. 22분 찰스 버넘의 포스트 근처 슛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볼이었지만 속수무책으로 실점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30분 두 번째 골이었다. 그림즈비의 숏코너 상황에서 뒷편으로 올라온 크로스를 오나나가 펀칭하려다 완전히 놓치면서 워런이 빈 골대에 밀어 넣을 수 있게 해줬다.

오나나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 2경기에서 제외됐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기 무대'가 됐어야 할 리그컵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4부리그 공격진을 상대로도 이런 실책을 연발한다는 것은 맨유의 골키핑 라인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맨유(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맨유(사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SNS)

이번 패배는 '역대급'이란 말로도 부족하지 않다. 맨유가 4부리그 팀에게 컵 대회에서 탈락한 것은 클럽 역사상 처음이다. 과거 1995년 3부리그 요크 시티, 2014년 3부리그 MK 돈스에게 당한 굴욕도 있었지만, 4부리그 상대로 이런 수준의 치욕을 당한 적은 없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 결과로 맨유가 이번 시즌 최대 45경기만 치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1959년 이후 가장 적은 경기 수로, 유럽 대회 진출 실패에 이은 컵 대회 조기 탈락까지 겹치며 명문구단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

BBC 라디오 5 라이브의 크리스 서튼 해설위원은 하프타임에 "그림즈비가 오늘 이긴다면 루벤 아모림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섣불리 내린 판단이 아니라 아모림에 대한 시각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기 종료 후 전 세계 축구 미디어들은 앞다퉈 맨유의 굴욕을 대서특필했다.

아모림 감독도 경기 후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4부리그 팀을 상대할 때는 골키퍼 탓이 아니다"며 "모든 것이 문제였다. 환경, 경기에 임하는 자세, 모든 것"이라고 자성했다. "경기 강도는 물론 압박 전술에 대한 개념조차 없이 경기에 임했다"며 "완전히 길을 잃었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절망감을 드러냈다.

이번 굴욕으로 아모림 감독은 지난 11월 부임 이후 44경기에서 16승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작년 시즌 프리미어리그 15위라는 최악의 성적에 이어 새 시즌도 3경기 무승으로 시작하며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30일 홈에서 번리전을 앞둔 맨유에게는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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