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에 '홈런 강탈'의 시대가 열렸다. 외야수가 펜스를 기어오르며 홈런성 타구를 허공에서 낚아채는 장면이 올 시즌에만 69차례나 연출됐다. 2012년 타구 추적을 시작한 이래 8월 기준 최다 기록이며, 이대로라면 지난 2년간 기록한 역대 최고치 76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은 애슬레틱스의 신인 중견수 덴젤 클라크다. 5월 빅리그에 데뷔한 클라크는 불과 한 달 만에 두 차례의 환상적인 홈런 강탈로 화제를 모았다. 토론토 근교에서 자란 클라크는 어린 시절 블루제이스의 케빈 필라를 보며 홈런 강탈을 꿈꿨다.
5월 30일 고향 토론토에서 그 꿈이 현실이 됐다. 토론토 포수 알레한드로 커크가 홈런성 타구를 날렸지만, 클라크는 펜스 중간을 발로 딛고 몸을 지탱한 채 여유롭게 공을 잡아냈다. 현지 언론은 "대형 선반 위의 요정 같았다"고 묘사했다. 클라크는 2주 후 에인절스타디움에서는 놀란 샤뉴엘의 홈런을 가로채며 펜스를 거의 넘어갈 뻔한 장면으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클라크 외에도 24세 이하 젊은 중견수들이 올해의 홈런 강탈 붐을 이끌고 있다. 시카고 컵스의 피트 크로-암스트롱, 시애틀의 훌리오 로드리게스, 보스턴의 세단 라파엘라, 세인트루이스의 빅터 스콧 2세, 텍사스의 와이어트 랭포드가 그들이다. 이들 외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홈런 3개 강탈로 메이저리그 공동 선두에 올랐고, 워싱턴의 제이콥 영과 뉴욕 메츠 세드릭 멀린스도 3개씩을 기록했다.
반면 홈런을 두 번씩이나 도둑맞은 불운의 주인공도 있다. 클라크의 희생양 놀란 샤뉴엘을 비롯해 코리 시거, 맥스 케플러, 마르셀 오주나, 조시 네일러가 이 부문 공동 1위다. "홈런을 한번 빼앗기면 며칠간 그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자신도 홈런 강탈자인 애리조나 외야수 코빈 캐럴의 말이다.
ESPN의 제프 파산 기자는 28일(한국시간) 기사에서 "이제 홈런 강탈은 키 193cm의 클라크처럼 엄청난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홈런 강탈이 늘어났을까. 제프 파산 기자는 펜스 높이와 거리가 줄어든 데다 플라이볼 비율이 급증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실제 메이저리그 플라이볼 비율은 2015년 33.8%에서 올해 38.5%로 뛰었다.
팀들도 외야수를 더 뒤쪽에 배치해 펜스까지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 데이터 분석에 정통한 구단인 밀워키는 중견수를 홈플레이트에서 100m나 떨어진 곳에 세운다. 코빈 캐럴은 "머리 뒤로 넘어가는 타구를 쫓는 것보다 옆이나 앞으로 빠르게 달리는 것이 훨씬 쉽다"고 말했다.
구장별 차이도 크다. 볼티모어 캠든 야즈는 14년간 홈런 강탈이 69개나 나온 구장이다. 일부 구간이 2.1m에 달할 정도로 낮은 펜스때문이다. 반면 시카고 리글리 필드는 담쟁이 덩굴 뒤에 숨은 벽돌과 최대 4.9m에 달하는 높이로 인해 홈런 강탈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클라크는 자신만의 홈런 강탈 노하우를 공개했다. "모든 투구 전에 볼카운트, 투수와 타자 특성까지 파악한다. 처음에 뭔가 잘못되면 끝에서도 잘못된다"면서 "두 걸음만 뛰면 공이 어디 떨어질지 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까지 정보가 된다"고 설명했다.
올바른 경로 선택, 펜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비결이다. 클라크는 "펜스 근처에서 편안한 외야수들이 차별화된다. 누구나 좋은 첫 발 스타트와 루트를 잡을 수 있지만 펜스 앞에서는 긴장한다"며 "나는 워닝 트랙에 도달하면 어디에 발을 딛을지 이미 안다"고 말했다.
코빈 캐롤은 "펜스와 공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타고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빠른 뒤돌아보기와 공간감각, 공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점프하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들에겐 어렵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홈런 강탈 과정을 분석했다.
현재 부상으로 쉬고 있는 클라크는 메이저리그 데뷔 47경기만에 홈런 강탈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12년 이후 최다 강탈 기록(14개)을 보유한 마이크 트라웃을 따라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벌써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외야수들이 이끌어가는 홈런 강탈 시대, 이제 타자들은 홈런성 타구를 쳐도 펜스를 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