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이적료로 유니폼을 바꿔입은 이사크(사진=리버풀 SNS)
거액의 이적료로 유니폼을 바꿔입은 이사크(사진=리버풀 SNS)

 

[스포츠춘추]

프리미어리그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30억 파운드(약 5조6100억원)를 쏟아부으며 역사상 최고 지출액을 경신했다. 이는 2023년 여름 23억6000만 파운드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1일(한국시간) 마감된 이적시장에서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광란은 절정을 이뤘다. 8월 31일까지는 27억3000만 파운드였지만, 알렉산데르 이사크의 리버풀 이적(1억2500만 파운드)을 비롯한 마감일 대형 딜들이 기록을 끌어올렸다. BBC는 "총 30억8700만 파운드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리버풀의 지출이 압도적이었다. 4억1500만 파운드(약 7760억원)를 쓰며 클럽 단일 시즌 최고 지출 기록을 세웠다. 2023년 첼시의 4억 파운드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조 하트 전 맨체스터 시티 골키퍼는 BBC에 "리버풀의 엄청난 과시"라며 "그들이 쓴 돈과 영입한 선수들은 경이적"이라고 평가했다.

리버풀은 이사크 외에도 플로리안 비르츠(1억1600만 파운드), 위고 에키티케(7900만 파운드), 제레미 프림퐁(2950만 파운드), 기오르기 마마르다슈빌리(2900만 파운드) 등을 영입했다. 대부분 유럽 리그에서 데려온 선수들이었다.

아스널(2억5500만 파운드)과 첼시(2억8500만 파운드)도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첼시는 판매를 통해 2억8800만 파운드를 벌어들여 순지출은 300만 파운드에 그쳤다. 반면 아스널은 판매액이 900만 파운드에 불과해 순지출이 2억4600만 파운드에 달했다.

승격팀들의 대규모 투자도 눈에 띄었다. 8년 만에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한 선덜랜드는 1억6200만 파운드를 써서 전체 8위를 기록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1억5200만 파운드)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번리와 리즈 유나이티드도 각각 1억 파운드 안팎을 투자했다.

크리스 서튼 전 프리미어리그 스트라이커는 BBC에 "지난 몇 년간 승격팀들이 곧바로 강등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선덜랜드의 놀라운 지출은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승격 즉시 강등이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승부수였던 셈이다.

이적이 불발된 게히(사진=마크 게히 SNS)
이적이 불발된 게히(사진=마크 게히 SNS)

프리미어리그의 막강한 자금력은 다른 유럽 리그들에게는 재앙이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올여름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상위 고액 선수 중 이사크를 제외한 비르츠, 에키티케, 닉 볼테마데 등이 모두 분데스리가 출신이었다.

바이어 레버쿠젠 스포츠 디렉터 시몬 롤페스는 "영국에서 도미노가 넘어지면 여기서도 넘어진다. 클럽으로서는 선수를 보내야만 하는 선택지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023-24시즌 더블을 달성한 레버쿠젠은 올여름 우승 전력에서 8명이 떠났고, 이 중 5명이 프리미어리그로 향했다.

바이에른 뮌헨 CEO 올리버 칸의 비판은 더욱 신랄했다. "많은 이들에게 이런 현실이 당연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경고 신호다. 독일 리그가 너무 안주하고 있고 모험을 두려워한다"며 독일 축구계를 질타했다. 빈센트 콤파니 바이에른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한 단어로 답했다. "돈."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해석했다. 딜로이트의 팀 런 디렉터는 "리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유럽 진출 경쟁이 이토록 격화된 적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4년짜리 새 TV 중계권 계약과 챔피언스리그 진출 6개 팀의 막대한 수익이 이런 돈잔치를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FootballTransfers.com의 폴 맥도널드는 더 나아가 축구계 생태계 자체의 변화를 지적했다. "프리미어리그 지출 규모가 다른 리그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제 이적시장 생태계에서 프리미어리그가 너무 중요해졌다"며 "라리가, 세리에A, 분데스리가, 리그1 모두 인재 공급처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분데스리가, 라리가, 리그1은 이번 여름 선수 판매로 4억 파운드가 넘는 순수익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이 이들 리그에서 인재를 빨아들인 결과다. 맥도널드는 "이제 '빅 원' 프리미어리그와 나머지로 구분해야 할 시점"이라고 결론지었다.

10년 연속 여름 이적시장에서 10억 파운드 이상을 지출한 프리미어리그의 돈잔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런 디렉터는 이런 지출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V 중계권은 수년간 보장된 막대한 수익원"이라며 "프리미어리그를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결국 돈이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축구의 모든 인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고, 나머지 리그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5조원이 넘는 돈이 한 리그에서 움직이는 현실 앞에서, 축구는 이제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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