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첼시가 스스로를 영국 축구협회(FA)에 신고했고, 결국 74건의 규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자신의 과거를 고발한 셈이다.
BBC 스포츠와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이 11일(한국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FA는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3년간 첼시의 에이전트 수수료 관련 거래에서 74건의 규정 위반 혐의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이 현재 구단주들의 자발적 신고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토드 볼리와 클리어레이크 캐피털이 이끄는 컨소시엄은 2022년 5월 첼시를 인수하면서 전임 소유주 로만 아브라모비치 시절의 어두운 거래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인수 완료와 동시에 FA에 이를 신고했다. 첼시 측은 "인수 과정에서 과거 거래의 재정 보고가 불완전했고 FA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거래들은 주로 2010-11시즌부터 2015-16시즌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황금기를 구축하던 바로 그 시절이다. 조사 대상에는 에덴 아자르, 사뮈엘 에토오, 윌리안의 영입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선수들 개인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다.
FA는 성명을 통해 "첼시 FC에 대해 FA 축구 에이전트 규정과 중개인 협력 규정, 선수 제3자 투자 규정 위반 혐의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에이전트와 중개인에 대한 미공개 지급, 미등록 중개인 사용, 제3자가 구단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한 협정 체결 등이 문제가 됐다.
2012년 릴에서 영입한 아자르는 첼시에서 7시즌을 보내며 352경기 110골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와 유로파리그를 각각 2차례씩 우승한 뒤 2019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2013년 러시아의 안지 마하치칼라에서 동시에 온 윌리안과 에토오 역시 첼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이다. 윌리안은 339경기에서 63골을 넣으며 5개 트로피를 획득했고, 에토오는 한 시즌만 뛰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첼시는 자신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단의 파일과 과거 데이터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 권한을 제공하는 등 전례 없는 투명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구단 측 설명이다. "10년 이상 전에 일어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 이 복잡한 사건에서 FA의 참여에 감사를 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자진 신고했다고 해서 처벌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FA는 벌금부터 이적 금지, 승점 감점까지 다양한 제재 수단을 가지고 있다. 다만 첼시 측은 적극적인 협조를 고려해 승점 감점이나 이적 금지 등의 제재는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3년 UEFA는 비슷한 사안으로 첼시에 1000만 유로(약 146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첼시 관계자들은 2022년 인수 당시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재정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향후 벌금이 프리미어리그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규정(PSR) 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2022년 영국 가디언 등이 진행한 국제 탐사보도가 있다. '사이프러스 컨피덴셜 파일'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360만 건의 역외 거래 기록이 유출되면서 아브라모비치의 복잡한 거래 구조가 드러났다. 아브라모비치와 연결된 회사들이 에이전트들에게 일련의 수수료를 지급했고, 축구계 슈퍼 에이전트 피니 자하비와 함께 유럽 전역 젊은 선수들에 대한 '제3자 소유권' 투자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58세인 아브라모비치는 2022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영국 정부의 제재를 받았다. 첼시 매각 대금 25억 파운드(약 4조3000억원)를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돈은 아직 영국 은행 계좌에 묶여 있다.
첼시는 9월 19일까지 혐의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편 프리미어리그도 같은 사안에 대해 별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BBC 스포츠가 확인했다. 자체 신고로 시작된 이번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