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게이트]
한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손꼽혔던 엠마누엘 클라세가 승부 조작 혐의로 연방 검찰에 기소됐다. 7월부터 시작된 수사가 넉 달 만에 정식 기소로 이어지면서, 현역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의 승부 조작이라는 야구계 최악의 스캔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 동부지검은 10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우완 투수 클라세와 루이스 오티즈를 통신 사기 공모, 뇌물 수수, 자금 세탁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오티즈는 이날 보스턴에서 체포됐으며 11일 법정에 출석한다. 클라세는 현재 미국 밖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공개한 23쪽 분량의 기소장은 충격적이다. 클라세는 2023년 5월부터 도박꾼들과 공모해 특정 투구의 결과를 사전에 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불법 도박이 이뤄지도록 했다. 오티즈는 2025년 6월 이 범행에 가담했다. 두 선수가 던진 조작 투구로 도박꾼들이 챙긴 돈은 최소 45만 달러(약 6억3000만원)에 달한다.

경기 중 통화하고 집에서 만나고…치밀했던 범행
기소장에 담긴 범행 수법은 치밀하면서도 대담했다. 클라세는 주로 타자와 첫 대결에서 슬라이더를 땅에 바운드시켜 볼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의 커터는 시속 159~161km(99~100마일)를 기록했지만, 슬라이더는 146km(91마일) 안팎이었다. 도박꾼들은 이 정보를 미리 알고 구속과 볼 카운트를 동시에 거는 조합 베팅으로 거액을 챙겼다.
4월 26일 경기는 범행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클라세는 8회 등판 직전 관중석에 앉아 있던 공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어 2분간 통화가 이뤄졌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중 선수의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4분 뒤, 도박꾼들은 클라세가 던질 특정 투구가 시속 157.6km 이하일 것이라는 데 돈을 걸어 1만1000달러(약 1540만원)를 벌었다. 경기가 끝난 뒤 클라세는 집에서 그 공모자를 만났다.
5월 17일 신시내티전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클라세가 경기 시작 2시간 뒤 도박꾼에게 "준비됐나"고 문자를 보냈다. "당연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10분 뒤 클라세는 시속 142km(88마일)짜리 슬라이더를 땅에 꽂았다. 도박꾼들은 1만 달러(약 1400만원)를 챙겼다.

"고향집 수리비로 보내라"…뻔뻔한 대가 요구
클라세는 범행 대가를 챙기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도박이 성공한 뒤 클라세는 도박꾼에게 "돈 일부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송금 목적을 물으면 "고향집 수리비"라고 답하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범행을 은폐하려는 치밀함과 파렴치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클라세는 때로 도박 자금을 직접 댔다. 5월 13일 도박꾼이 클라세에게 계좌번호를 보내며 "보낼 수 있으면 보내. 안 되면 우리가 가진 걸로 하지 뭐"라고 했다. 클라세가 얼마를 보낼지 묻자 도박꾼은 "보낼 수 있는 만큼, 2500달러 이하"라고 답했다. 그날 클라세는 2500달러(약 350만원)를 송금했고, 도박꾼들은 특정 투구로 3500달러(약 490만원)를 벌었다. 경기 후 도박꾼은 다시 클라세의 집을 찾았다.
클라세는 2025년 6월 후배 오티즈마저 범행에 끌어들였다. 6월 15일 시애틀전 선발로 나선 오티즈는 2회 첫 투구를 볼로 던지기로 했다. 대가는 5000달러(약 700만원). 클라세도 중개 대가로 5000달러를 받기로 했다. 오티즈는 약속대로 슬라이더를 땅에 꽂았고, 도박꾼들은 1만3000달러(약 1820만원)를 걸었다. 시애틀은 그 이닝 오티즈를 상대로 5점을 뽑아냈다.
사흘 뒤 클라세는 오티즈에게 9만 페소(약 700만원) 송금 영수증 사진을 보냈다. 클라세는 오티즈에게 "송금 목적 물으면 '말을 샀다'고 둘러대. 알았지?"라고 지시했다. 오티즈는 "알았어, 완벽해"라고 답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가축 거래는 흔한 일이라 수상한 송금을 위장하기 좋은 구실이었다.
6월 27일 세인트루이스전을 앞두고 범행은 더욱 대담해졌다. 클라세는 은행에서 5만 달러(약 7000만원) 현금을 인출했다. 이 중 1만5000달러(약 2100만원)를 도박꾼에게 건넸다. 클라세는 그에게 경기 티켓까지 줬다. 1시간 뒤 도박꾼은 같은 은행 지점에서 1만5000달러를 입금했다. 도박꾼들은 오티즈의 특정 투구에 1만8000달러(약 2520만원)를 걸었다.
오티즈가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나 포수도 잡지 못하고 백스톱까지 굴러갔다. 도박꾼들은 3만7000달러(약 5180만원)를 벌었다. 세인트루이스는 그 이닝 오티즈를 상대로 3점을 뽑았다. 팀은 지고 있었고, 오티즈는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세와 오티즈, 도박꾼들에게 팀의 승리나 경기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돈이었다.

세이브 상황에서도 던진 조작 투구
클라세의 범행은 승부처에서도 이어졌다. 기소장에는 클라세가 연루된 경기 9건이 담겼다. 충격적인 건 이 중 8경기에서 클라세가 실점하지 않았거나 1실점에 그쳤다는 점이다. 세이브를 날린 경기는 단 한 차례였다. 클라세는 팀을 이기게 하면서도 특정 투구 하나로 도박꾼들에게 돈을 안겨줬다.
2023년 5월 19일 뉴욕 메츠전에서 클라세는 10회 3점을 내줘 9대 10으로 졌다. 도박꾼들은 그날 밤 클라세가 던질 특정 투구가 시속 152.7km(95마일) 이상일 것이라는 데 돈을 걸어 2만7000달러(약 3780만원)를 벌었다. 클라세는 경기에서 졌지만, 도박꾼들은 이겼다.
2주 뒤인 6월 3일 클라세는 4대 2로 앞선 9회 등판했다. 팀은 이기고 있었다. 세이브 상황이었다. 하지만 클라세가 던진 슬라이더는 홈플레이트 앞 땅을 강타했고 포수 마이크 주니노의 몸에 맞았다. 주니노는 잠시 허리를 굽힌 채 아파했다. 도박꾼들은 특정 투구가 시속 152.7km 이하이면서 볼일 것이라는 데 돈을 걸어 3만8000달러(약 5320만원)를 챙겼다. 클라세는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팀은 이겼고, 도박꾼들도 이겼다.
단 한 번, 계획이 어긋난 적이 있다. 5월 28일 LA 다저스전에서 클라세가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던진 공을 타자 앤디 파헤스가 헛스윙했다. 볼이 아니라 스트라이크가 된 것이다. 도박꾼은 클라세에게 "망했다"는 뜻을 담은 움짤을 보냈다. 클라세는 10분 뒤 미안하다는 듯 슬픈 표정의 움짤로 답했다. 동료들과 팀, 팬들을 배신하면서도 도박꾼에게는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신뢰 배신했다"…최대 65년 형
조셉 노첼라 주니어 뉴욕 동부지검 연방검사는 "피고인들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메이저리그를 속였다"며 "도박 사이트를 사취했고 미국 야구를 배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 스포츠의 DNA는 정직과 공정한 경기"라며 "부패가 스포츠에 침투하면 참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제도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두 선수는 유죄가 확정되면 최대 65년 형을 받을 수 있다. 통신 사기 공모 20년, 정직 의무 위반 사기 공모 20년, 자금 세탁 공모 20년, 스포츠 경기 뇌물 공모 5년이다.
오티즈의 변호인 크리스 조지랄리스는 "오티즈는 결코 경기에 부적절한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며 "그는 늘 치열한 경쟁자였고 매 이닝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티즈가 도미니카공화국 인물들과 주고받은 돈은 합법적인 활동을 위한 것"이라며 "기소장에는 루이스를 도박꾼들과 연결하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클라세 측 변호인은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피트 로즈 이후 최악의 스캔들
이번 사건은 1989년 피트 로즈가 야구 도박으로 영구 제명당한 이후 메이저리그 최악의 도박 스캔들이 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규정 21d(2)는 "자신의 소속팀 경기에 도박하는 선수는 영구 자격 박탈"이라고 명시한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내야수 투쿠피타 마르카노는 야구 도박 400건으로 영구 제명됐다. 클라세와 오티즈가 마주할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클라세는 3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최근 3시즌 아메리칸리그 세이브 1위를 기록한 특급 마무리였다. 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1200만 달러(약 168억원) 이상을 벌었고, 2026년 연봉은 640만 달러(약 90억원)로 예정돼 있었다. 오티즈의 2025년 연봉은 78만2600달러(약 11억원)였다. 이미 충분한 돈을 벌고 있었지만, 클라세에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두 선수는 7월부터 유급 휴직 상태다. 한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였던 클라세와 유망주 오티즈. 이들은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매일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도박꾼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돈을 챙기고 있었다. 팬들은 이들의 투구에 환호했지만, 그 환호 뒤에는 조작된 공이 숨어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이들을 믿고 중요한 순간을 맡겼지만, 이들은 그 신뢰를 배신하며 제 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성명을 통해 "수사 초기부터 연방 수사 당국에 연락해 전면 협조했다"며 "기소와 체포 사실을 알고 있으며 조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클리블랜드는 "법 집행 기관 및 메이저리그와 계속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박이라는 유혹이 선수 개인은 물론 팀 전체를, 그리고 야구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참담한 사례다. 클라세와 오티즈가 던진 조작 투구는 단순히 몇 개의 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팀 동료와 팬, 그리고 야구 그 자체에 대한 배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