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NC 다이노스는 창단 이후 줄곧 FA(프리에이전트)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해 왔다.
2013년 이후 10년간 외부 FA 영입에 쓴 돈만 무려 522억 5000만원. 이종욱, 손시헌, 이호준, 박석민, 양의지까지 굵직한 FA 영입전에서 번번이 승리했다. 특히 2019년 ‘최대어’ 양의지 영입은 팀을 2020년 창단 첫 통합 우승으로 이끈 신의 한 수였다.
김택진 구단주(엔씨소프트 대표)의 야구사랑과 모기업의 탄탄한 자금력이 NC를 부자구단으로 키웠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NC 모기업 엔씨소프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2020년 야구단 우승 시즌에는 게임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창사 이래 처음 매출 2조 원대를 돌파했고, 주가도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지난 2년은 야구단에도 모기업에도 시련의 시기였다. 엔씨소프트는 여러 악재와 게임업계 트렌드 변화로 위기를 겪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고, 한때 100만원이 넘던 주가는 30만원대로 폭락했다. 야구단도 지난해엔 방역수칙 위반 사태, 올해는 시즌 중 감독 사퇴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수난을 겪었다.
NC 최우선 순위는 양의지-박민우-노진혁, 몸값 합계 200억원 전망

다사다난했던 2022시즌을 마친 NC는 올겨울 창단 이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FA 자격을 얻는 내부 선수만 8명. 주전 포수 양의지와 2루수 박민우, 유격수 노진혁, 외야수 이명기와 권희동, 투수 원종현과 이재학, 심창민이 FA 취득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심창민을 제외한 7명은 FA 신청이 확실시된다. 7명의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합계는 12.53승으로 5위팀 KIA 타이거즈 투수진 전체의 합계(12.69승)와 맞먹는다. NC 예비 FA 7명이 KIA 투수 30명과 비슷한 생산성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NC의 이번 FA 시장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내부 FA에 접근할 예정이다. NC 한 관계자는 “자체 평가 결과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선수는 양의지, 박민우, 노진혁 순이다. 특히 양의지와 박민우는 당장 내년 시즌에는 내부 자원으로 대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양의지는 현 리그 최고 포수이자 NC 우승을 이끈 안방마님이다. 2019년 NC에 건너와 4년간 타율 0.322에 103홈런 397타점 OPS 0.968의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4년간 양의지가 올린 WAR은 23.05승으로 같은 기간 이보다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 선수는 키움 이정후(26.40승) 하나뿐이다.
원래 NC는 포수 유망주 김형준이 상무에서 전역하면 양의지와 포수 출전 시간을 나눠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키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형준이 전역 직전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는 악재가 발생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양의지를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현 포수진에서 양의지가 빠져나가면 대안이 없다. 정범모가 주전으로, 광주일고에서 코치하던 윤여운이 백업 포수로 나왔던 2018년의 혼란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리드오프이자 주전 2루수 박민우도 대체 불가 자원이다. NC는 박민우가 없으면 당장 주전 2루를 맡길 내부 자원이 마땅찮다. 김주원은 2루보다는 차기 유격수로 키우는 자원이고 서호철도 2루보다 코너 내야수에 가깝다. 박민우 후계자로 키우는 최정원은 상무에서 군 복무 중이다.
그나마 노진혁의 자리인 유격수-3루수는 대안이 없지는 않다.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을 날린 김주원이 주전 유격수 자리를 넘보는 가운데 박준영-서호철-도태훈이 3루수 경쟁을 펼친다. 하지만 노진혁의 홈런 파워와 타격 생산성을 완벽하게 대체할 정도는 아니기에, 일단 잔류를 목표로 협상할 예정이다.
다만 NC가 ‘양-박-노’ 잔류 목표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NC 내부에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NC의 ‘빅 3’ 몸값을 합하면 200억원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양의지는 복수 구단을 넘어 ‘다수’ 구단이 1순위 영입 목표로 군침을 흘리는 최대어다. NC와 원소속팀 두산, 포수가 약한 지방구단, 주전포수가 FA 자격을 얻는 다른 지방구단이 참전을 벼르고 있다. 두산-NC 2파전이던 4년 전보다 오히려 몸값이 뛸 가능성도 있다.
박민우 역시 역대 FA 내야수 가운데 상위권 몸값이 예상된다. 모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박민우의 경우엔 기량이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비싼 몸값’ 때문에 주저하는 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노진혁은 내야가 약한 수도권 구단, 유격수가 약점인 지방구단에서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3개 구단이 경쟁하면 몸값이 뛰는 건 시간문제다.
임선남 NC 단장도 “(내부 FA 전원 잔류를)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인정했다. “(노진혁도) 생각보다 원하는 구단이 많더라”고 진단한 임 단장은 “내부 FA 잔류 여부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올 시즌 뒤부터 시행하는 샐러리캡 제도도 고려해야 한다. NC의 올해 선수단 연봉총액을 감안하면 2023년 샐러리캡 여유공간은 50억원 안팎이 예상된다. FA 4년 계약 기준으로는 200억 정도를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양-박-노’를 전부 잡기엔 빠듯한 금액이다. 임 단장도 “샐러리캡 안에서 FA 계약이 가능할지는 그때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2년전과 달라진 엔씨소프트 상황, 야구단에 거액 투자 가능할까

FA에 200억원을 쏟아붓는 건 구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다. 모기업의 승인이 떨어져야 가능하다.
문제는 2년전 우승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엔씨소프트는 올해 1분기 매출 7903억원에 영업이익 2442억원을 기록했지만 2분기에는 매출(6293억원)과 영업이익(1230억원)이 각각 1분기 대비 20%, 50%씩 감소했다. 100만원을 뚫었던 주가도 지난해말 60만원대를 거쳐 올해 9월 30만원대로 세 토막 났다.
올해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던 신작 게임 ‘쓰론앤리버티(TL)’도 내년 상반기로 출시가 미뤄진 상황. 이 발표가 나온 직후 주요 12개 증권사는 일제히 엔씨소프트 목표주가를 40만 원대로 조정했다. 당장 돈을 쓸어담을 캐시카우가 마땅찮은 데다 국내외 경제위기까지 겹쳐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엔씨소프트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본사에서 야구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2년 전과는 달라진 게 사실이다. 야구단 운영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과 이사회의 부정적인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기류를 읽은 야구단에서도 수익 창출과 자생력 강화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라며 “과거처럼 NC가 FA 시장 포식자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NC 야구단 관계자는 “아직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본사 지원이) 잘 됐으면 좋겠는데 장담은 하지 못한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FA 시장에서 NC가 더이상 ‘큰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따뜻했던 공룡시대가 저물고, 추운 빙하기가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