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스토브리그가 열린 지 벌써 20일이 넘게 지났지만, 새 외국인 선수 영입은 감감무소식이다.
12월 6일 현재 KBO리그 구단과 계약한 외국인 선수는 총 5명. 10개 구단 외국인 TO 30명의 1/6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3명(케이시 켈리, 오스틴 딘, 애런 윌커슨)은 재계약 선수다. 뉴페이스는 로버트 더거(SSG)와 요나단 페라자(한화) 둘 뿐이다. 외국인 선수 시장이 예년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시장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A구단 단장의 말이다. “그래도 타자 쪽은 조금 나은데 괜찮은 투수는 정말 찾기가 어렵다. 늘상 수요가 공급을 추월하는 게 이 시장 특징이지만 올해가 유독 더한 것 같다.”
메이저리그 구단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투수가 없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 구단들도 쓸만한 투수가 없어서 난리다. 그간 국외진출 루머조차 없던 고우석과 함덕주를 신분 조회한 구단이 나온 것만 봐도 미국야구가 얼마나 투수난에 허덕이는지 잘 드러난다”는 의견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 없는 투수로 평가받았던 에릭 페디는 KBO리그를 초토화한 뒤 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이 또한 미국야구의 투수난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년 같았으면 한국 야구에 왔을 법한 레벨의 선수가 40인 로스터에 묶여 있는 경우도 많다. 예전엔 이적료를 챙기려고 일부러 묶어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앞의 빅리그 스카우트는 ”최근 KBO리그에서 에이스급으로 활약한 외국인 투수를 보면 속구 평균구속 150km/h에 확실한 주무기를 갖췄고,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들“이라며 ”이 정도 선수는 빅리그에서도 구단에 따라 5선발이나 불펜 경쟁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일본 구단과 머니게임, 100만 달러로는 게임이 안 돼
미국 구단이 좋은 선수를 놔주지 않는 가운데, 어렵게 좋은 선수가 시장에 나와도 일본프로야구 구단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B구단의 외국인 선수 담당자는 “괜찮다 싶은 선수는 일본으로 가버린다”며 “한국은 새 외국인 선수에게 줄 수 있는 금액이 100만 달러로 제한돼 있는데, 일본은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KBO리그는 2018년 이사회에서 신규 외국인 선수의 계약 총액을 연봉, 인센티브, 이적료, 계약금 포함 최대 100만 달러로 제한했다. 반면 일본야구는 외국인 선수 몸값에 제한이 없다. KBO리그 복수 구단이 영입을 추진했던 투수 중 하나가 최근 일본 구단과 맺은 후 계약 총액은 약 2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C가 리그 MVP 페디에게 제시한 1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최근 여러 구단은 협상 중인 외국인 선수의 에이전트가 ‘양다리 전략’을 펴는 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C구단 단장은 “외국인 선수들이 KBO리그를 보험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한국 구단 쪽의 제안을 들어본 뒤 일본이나 미국 쪽의 오퍼를 기다리는 선수가 많다. 오퍼를 넣은 지 꽤 지났는데 좀처럼 답을 주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다. 다른 구단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인 것으로 안다.“
이미 특정 선수와 계약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구단 관계자도 ”아직 모른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당히 진척된 건 맞지만 아직 도장을 찍은 단계가 아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악무한이다. 좋은 선수 자원은 한정적인데 몇 안 되는 선수를 놓고 일본, 미국 구단과 경쟁해야 한다. 100만 달러로는 일본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원하는 선수 계약에 실패하면 차선이나 차악을 100만 달러를 주고 데려와야 한다. 꿩대신 데려온 닭이라 실패할 확률이 높고, 100만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외국인 선수를 퇴출한 구단은 다시 그보다 급이 더 떨어지는 선수를 부랴부랴 데려와 시즌을 치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규시즌이 끝나고, 구단은 다시 100만 달러에 계약할 새 외국인 선수를 찾는다.

여기에 올겨울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이른바 ‘로봇심판’이다. 사람에 따라 스트라이크존 형태가 조금씩 다른 인간 심판과 달리, ABS는 야구 규칙에 나오는 존을 그대로 판정한다. 허운 심판위원장은 “로봇심판을 경험한 투수, 타자 사이에선 존의 좌우가 엄청 좁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무래도 기계가 규칙대로 적용하는 거니까 존이 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실제 로봇심판을 적용한 올해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선 존의 좌우를 넓게 활용하는 유형의 투수들이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사이드암 투수들의 볼넷 비율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투수 뎁스가 약한 약체팀 간 경기에선 무더기 볼넷이 나오면서 한 경기에 볼넷이 20개씩 나오기도 했다. 구단 사이에선 이런 변수가 외국인 투수 스카우트에도 중요하게 고려될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A구단 단장은 ”아직 해보지 않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섣불리 얘기하긴 어렵다“면서도 ”아마야구와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나타난 양상을 보면 존의 좌우보다 상하를 더 잘 잡아주는 경향이 있더라. 좌우를 주로 활용하는 투수는 불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SSG가 새로 영입한 더거도 이 변수를 고려해서 데려온 선수다. 더거는 볼 스피드는 평균 145km/h 정도로 평범하지만, 스트라이크를 꾸준히 던지는 제구가 장점인 선수다. SSG 관계자는 ”물론 그 부분도 생각했다. 존의 상하를 활용하고 공략하는 부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맞춰서 선수를 보고 민첩하게 대응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기존 외국인 투수와 새 외국인 투수를 놓고 저울질하는 중인 D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얘길 들려줬다. “외국인 투수의 구위도 중요하지만 ABS 변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투수가 제구가 좋은 투수라서 일단 보류선수에 올려뒀다. 물론 더 좋은 선수가 나온다면 교체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워낙 외국인 선수 인력난이 심해 ABS 변수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다는 구단도 있다. E구단 단장은 “그 변수까지 고려해서 선수를 데려오고 싶지만, 이것저것 다 따질 정도로 후보가 많지 않아서 걱정이다”라고 입맛을 다셨다.
워낙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일본-미국과 경쟁도 심하다 보니 상당수의 구단은 기존 선수 재계약 혹은 타구단 출신 ‘재활용’까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C구단 단장은 “팬들 사이에서 기존 선수 재계약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건 안다”면서도 “당연히 더 좋은 선수가 나오면 새로운 선수와 계약할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너무 없어서 재계약도 대안으로 남겨둬야 한다. 우리도 고민이 많다”고 호소했다.
B구단 관계자도 “섣불리 기존 선수와 재계약 한다, 안 한다 언급하면 팬들이 ‘직무유기’라고 비판하지 않겠나“라며 ”외국인 선수 영입은 빠르게 하는 것보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존 선수보다 경쟁력 있는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존 선수 재계약도 카드로 남겨놓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시장에 정통한 관계자는 ”시장 상황과 선수 수준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타구단이 보류선수에서 제외한 선수를 고려하는 팀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아무래도 KBO리그를 1년 경험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실제 에이전트 쪽에 접촉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관계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이 끝나야 외국인 시장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에이전트는 “윈터미팅이 끝나면 FA와 트레이드 등으로 선수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구단마다 로스터를 정리하고 나면 한국에 올 만한 선수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많은 구단은 해를 넘긴 장기전도 각오하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