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한화 이글스 소속 선수는 지난 3월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 30명 엔트리는 9팀 선수들로만 가득 채워진 것. 이에 독수리군단의 주장 정우람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KBO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3년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한화 이글스에서 가장 많이 배출될 것이다.”
팀 후배들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호언장담이다. 정우람의 예언은 차츰 현실이 되고 있다. 당장 시즌 종료 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쉽(APBC)에도 내야수 노시환, 우완 문동주, 유틸리티 문현빈 등이 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예비 선수로 전체 일정을 소화한 포수 허인서(상무)도 있다.
무엇보다, 유망주들의 대표팀 승선은 ‘한화의 리빌딩이 기나긴 터널을 마침내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초 WBC 국대 0명’ 한화, 연말 국대 3인방에 미소 되찾았다

올해 국가대표 차세대 ‘4번 타자’와 ‘에이스’가 한화에서 배출된 건 의미가 남다르다.
먼저 정규시즌 MVP급 활약을 남긴 2000년생 우타 내야수 노시환은 프로 데뷔 5년 만에 리그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다. 노시환은 이번 시즌 131경기를 출전해 153안타 31홈런 101타점 타율 0.298, 출루율 0.388, 장타율 0.541을 기록했다. 홈런·타점 타이틀 석권에 시즌 종료 후 생애 첫 3루수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에만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APBC 두 대회 연속 태극마크도 달고 류중일호의 4번 타자 역할을 도맡았다.
류중일호의 에이스도 한화에서 나왔다. 160km/h 우완 파이어볼러 문동주 얘기다. 문동주는 2003년생으로 올해 프로 2년차를 맞았다. 지난해 1군에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신인왕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문동주는 올 시즌 23경기를 등판해 8승 8패 42볼넷 95탈삼진 평균자책 3.72 호성적을 거뒀다. 이에 문동주는 류현진(2006년) 이후 17년 만에 나온 독수리 신인왕 쾌거를 일궈냈다. 또 노시환과 함께 대표팀에 2연속 승선해 아시안게임 금메달, APBC 준우승을 견인한 바 있다.
2004년생 루키 문현빈의 활약 역시 한화 팬들을 웃게 했다. 올해 4월 개막 엔트리에 든 문현빈은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시즌 내내 1군을 지켰다. 137경기에 나서 114안타 5홈런 49타점 5도루 타율 0.266, 출루율 0.324, 장타율 0.362를 기록했다. ‘한 시즌 100안타’는 한화 소속 고졸 신인 최초다. 시즌 종료 후에는 APBC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려 류중일호의 주전 좌익수로 활약했다. 과거 고교야구 때부터 외야는 중견수만 소화했던 문현빈은 이번 대표팀을 통해 코너 외야수 경험까지 장착해 돌아왔다. 그것도 ‘도쿄돔 한일전’이라는 큰 무대를 통해 얻은 값진 성과다.
한화 국대 3인방은 그 누구보다 바쁜 연말을 보냈다. 자선행사부터 시상식 등에서 만난 노시환, 문동주, 문현빈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내년 시즌을 향한 각오를 불태운 바 있다. 특히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취재진과 만난 노시환은 “우리 팀 어린 선수들이 정말 잘한다”며 “지난해 (정)은원이 형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올해는 내가 받았다. 팀에 (문)동주부터 (문)현빈이까지 훌륭한 후배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내년이 또 기대된다. 한화에서 계속 더 많은 수상자가 나올 거라 믿는다”며 동료들을 향한 두터운 신뢰를 내비쳤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노시환-문동주, 후배들 향한 믿음 확고했다

올해 신인왕 수상과 함께 국대 차기 에이스로 거듭난 문동주 역시 팀 후배들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또 재능 많은 후배들이 제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KBO 시상식에 참석한 문동주가 ‘신인왕 수상에 따른 책임감’을 강조하며 “(김)서현이, (황)준서 등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도록 내가 앞장서서 잘하겠다”고 말한 까닭이다. 이어 문동주는 “두 선수 모두 내년 신인왕을 노릴 수 있는 재능이고, 당연히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우리 팀도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2004년생 신인 김서현은 훗날 문동주와 함께 한화의 특급 파이어볼러 계보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다. 올해 1군에서는 20경기에 등판해 23볼넷 26탈삼진 평균자책 7.25로 부침을 제법 겪었다. 문동주의 프로 1년차(2022년)와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해 문동주는 1군 시험대에서 13경기 평균자책 5.65로 다소 아쉬운 성적에 그쳤다. 이를 이겨내고 신인왕에 오른 문동주의 모습은 김서현에게 큰 귀감이 될 전망. 때마침 김서현도 올해 30이닝을 넘기지 않았기에 내년 시즌 신인왕 후보 자격이 남아 있다.
문동주는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황준서도 기대주로 언급했다. 장충고의 2005년생 좌완 황준서는 올 시즌 고교야구 공식전 15경기에 등판해 6승 2패 58탈삼진 평균자책 2.16 활약을 펼쳐 신인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한화는 그런 황준서를 최원호 감독이 직접 이끄는 11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데려가 현시점 기량 및 차기 시즌 활용도를 점검한 바 있다. 상황에 따라, 올해 신인 문현빈이 개막 엔트리에 든 것처럼, 내년에는 황준서가 즉시전력 자원으로 기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둘 어깨에만 한화의 미래가 걸린 건 아니다. 그간 오랜 리빌딩 과정에서 이미 많은 유망주들이 경험치를 쌓았다. 여기에 채은성, 이태양, 안치홍, 김강민 등 내로라하는 베테랑들도 가세했다. 이와 관련해 양상문 SPOTV 해설위원은 “한화는 희망찬 대목이 많다. 선수 성장은 1, 2년 만에 불쑥 되는 게 아닌데, 그걸 차근차근 잘 준비했다. 여기에 김강민 같은 베테랑을 보강하면서 신예들이 자칫 놓칠 수 있는 디테일까지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우람의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3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팀 투·타 주축으로 올라선 노시환, 문동주의 활약은 일종의 신호탄이다. 또 2년 후면 신축구장 베이스볼드림파크(가칭)가 개장한다. 이에 한화는 그간 공들여 모은 보석들의 ‘만개’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