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환의 환한 미소(사진=한화)
노시환의 환한 미소(사진=한화)

 

[스포츠춘추=고척] 

“문동주, 김혜성, 그리고 노시환을 주목하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 중인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가 펼쳐지는 축제의 장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고척돔 타석에 등장하고 무키 베츠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꿈같은 장면이 현실로 이뤄졌다. 오타니가 타석에 나온 순간, 고척돔 지붕이 들썩일 만큼 큰 함성이 터지고 오타니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관중들은 물론 더그아웃의 국내 선수들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오타니를 주목했다.

장차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는 좋은 쇼케이스무대이기도 하다. 물론 KBO리그 경기도 중요하지만, 실제 빅리거들을 상대로 대처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보다 정확한 선수 평가에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시리즈 기간엔 MLB 구단 관계자와 스카우트, 유명 기자들이 고척을 찾아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유심히 관찰했다. 한국야구와 선수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국내 관계자, 미디어 종사자를 붙잡고 질문공세를 폈다.

17일 스페셜게임으로 열린 팀 코리아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에도 미국 구단들이 예비 빅리거로 눈여겨보는 선수가 여럿 출전했다. 선발로 나온 문동주(한화 이글스)를 비롯해 김혜성(키움 히어로즈), 강백호(KT 위즈), 노시환(한화)이 잠재적 미국 진출 후보로 분류된다. 경기를 지켜본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이들의 플레이에 어떤 평가를 했을까.

파드리스 상대로 등판한 문동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파드리스 상대로 등판한 문동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장점 보여준 문동주, 페타주도 칭찬한 원태인

우선 선발 문동주는 숫자만 보면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1회 시작하자마자 세 타자 연속 볼넷으로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간 듯 공이 높았고(잰더 보가츠 타석), 나중엔 너무 낮은 곳에 탄착점이 형성됐다(제이크 크로넨워스 타석). 구속은 최고 96마일(155km/h)로 마지막 시범경기 등판(148km/h) 보다 빨랐지만 영점을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단 무사만루 위기 이후엔 나쁘지 않았다. 매니 마차도를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김하성을 뜬공 처리해 2아웃을 잡았다. 폭투로 선취점을 내줬지만 2사 만루에서 루이스 캄푸사노를 삼진으로 잡고 추가 피해 없이 1회를 마쳤다. 2회엔 세 타자를 공 7개로 삼자범퇴 처리했다. 경기 후 “1회 때 기억은 모두 잊어버렸다. 2회 때 좋은 기억만 남겨 두겠다”고 말할 정도로 1회와 2회 투구내용이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빅리그 A구단 스카우트는 ”1회에는 좀 흔들렸지만 이후로는 장점인 빠른볼 구속을 잘 유지하면서 만회했다. 초반 난조를 빠르게 조정하고 극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회전이 좋은 커브도 기억에 남는다. 일단 컨택이 이뤄지면 웬만해선 강한 타구가 나오지 않더라. 좋은 투수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문동주의 전력투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문동주의 전력투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원태인의 피칭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원태인의 피칭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스카우트는 두 번째 투수로 나온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오늘은 원태인의 쇼케이스 같았다“고 운을 뗀 스카우트는 ”평소보다 좋은 구속을 유지했고 체인지업의 움직임이 훌륭했다“고 했다. 이날 원태인은 양 팀 투수 중에 가장 많은 7번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마이크 실트 파드리스 감독도 경기 후 “한국의 두 번째 투수의 대범한 투구가 돋보였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도 그 선수를 무척 칭찬했다”며 원태인을 특별히 언급했을 정도. 지금까지 미국 구단 사이에서 원태인에 대한 평가는 ‘미국보다는 일본행 가능성이 있는 후보’ 정도였는데, 이날 호투로 평가가 달라졌을지 주목된다.

김혜성과 박성한(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김혜성과 박성한(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김혜성-노시환,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야구 보여줬다”

이날 경기는 한국의 0대 1 패배로 끝났다. 대표팀 타자들은 경기 초반 침묵하다 후반부터 산발적으로 안타를 치며 찬스를 만들었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혜성과 노시환은 4타수 1안타, 강백호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내셔널리그 B구단 스카우트는 김혜성에 대해 ”마지막 타석에서 좌완 완디 페랄타 상대로 안타를 만든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김혜성은 페랄타의 높은 쪽 151km/h 속구를 필드 반대편으로 향하는 안타로 연결했다.

이 스카우트는 ”수준급 컨택 능력을 갖춘 김혜성은 그간 미국야구에 진출한 한국인 타자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선수“라면서 ”장점이 뚜렷해 굳이 파워를 키우거나 갭 히팅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지금처럼 많은 컨택을 만들면서 주자로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분명히 매력을 느끼는 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혜성은 올 시즌 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예정이다.

2루 수비에선 이번 서울시리즈를 맞아 교체된 인조잔디가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앞의 스카우트는 ”기존 잔디는 바닥이 딱딱하고 잔디가 뒤로 누운 형태라 타구 속도가 빠르고 처리하기도 까다로웠다. 이번에 그라운드 상태가 메이저리그와 비슷해진 만큼 수비에서도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바라봤다.

노시환의 시원한 스윙(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노시환의 시원한 스윙(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ML 스카우트가 이날 한국 타자 중에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선수는 4번타자 노시환이다. B구단 스카우트는 ”이제는 노시환의 타석이 기대가 된다. 무조건 크게만 치려고 휘두르지 않고, 상대 투수나 경기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시환 앞에 주자가 없으면 아쉬울 정도“라고 호평했다.

이날 마지막 타석에서 노시환은 파드리스 마무리 로베르토 수아레즈 상대로 우전안타를 날렸다. 초구155km/h 빠른 볼을 과감하게 돌려서 반대편 안타로 연결했다. 팀이 0대 1로 끌려가는 상황, 마지막 이닝 선두타자로 나와서 꼭 필요한 안타를 만들어낸 장면이다. 강속구 대응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안타였다.

노시환은 이날 한국 타자 가운데 가장 빠른 타구속도를 기록했다. 수아레즈 상대로 친 안타가 시속 108.3마일 (174km/h)에 달했고, 로스 산토스에게 친 땅볼타구도 106.9마일(172km/h)로 측정됐다. 이미 검증된 파워에 빠른볼 대응과 타구속도까지, 스카우트가 매력을 느낄 만한 장점을 골고루 보여준 노시환이다.

A구단 스카우트도 “미국진출 행렬에서 김혜성의 다음 주자는 노시환일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 그렸던 것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 본인만 의향이 있다면, 미국 진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타격 원툴이 아닌 강한 어깨, 주루 센스까지 갖춘 선수란 점도 매력적이다.

노시환은 2019년부터 5년간 풀타임 1군 선수로 활약했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이르면 내년 시즌 뒤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 자격이 생긴다. 올 시즌부터 스카우트들의 눈과 귀가 본격적으로 노시환을 향할 전망이다. B구단 스카우트는 “김혜성, 노시환은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남겼다.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한 강백호(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한 강백호(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편 강백호는 이날 4타수 무안타로 아쉬운 답안지를 남겼다. A구단 스카우트는 “좋은 타격 재능을 지닌 선수인 건 분명하지만, 다소 상황에 맞지 않는 스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투수나 주자에 관계없이 같은 스윙을 가져가는 게 아쉽다”고 했다.

강백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 자격을 얻는다. B구단 스카우트는 “수비, 주루능력을 겸비한 김혜성, 노시환과 달리 강백호는 타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만약 국외 진출에 뜻이 있다면 올시즌 타격에서 정말로 압도적인 장점을 발휘해야 만족스러운 조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