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13개월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은 엘레나 리바키나(카자흐스탄)가 트로피 세레모니에서 뜻밖의 화제를 낳았다. 우승 소감을 말하면서 현재 출전정지 징계 중인 전 코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리바키나는 5월 25일(한국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WTA 500 인터내셔널 오브 스트라스부르 여자 단식 결승에서 리우드밀라 샘소노바(러시아)를 6-1, 6-7(2), 6-1로 꺾고 작년 4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이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세레모니에서 리바키나는 현재 코치인 다비데 상기네티를 향해 "다비데, 지금 홀로 서 있지만 나에게는 훌륭하고 든든한 팀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피트니스 코치, 물리치료사, 스테파노 그리고 가족과 모든 스폰서들에게 감사드려요"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언급된 '스테파노'는 스테파노 부코프로, 지난 6년간 리바키나의 코치를 맡아왔지만 현재 WTA로부터 1년간 출전정지 징계 중인 인물이다. WTA는 지난 2월 부코프가 리바키나에게 "언어적 학대"를 가했으며 "선수의 심리적, 신체적, 정서적 안녕을 위협하는 학대 행위"를 벌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WTA 최고경영자 포티아 아처가 부코프에게 보낸 서한에는 그가 "권한 남용과 학대적 행위에 관여했으며, 선수의 복지를 해치거나 해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리바키나는 부코프가 자신을 "결코 학대하지 않았다"며 지속적으로 그를 옹호해왔다.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리바키나는 작년 US 오픈 직전 부코프를 해고했지만, 불과 몇 주 만에 다시 팀으로 복귀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미 WTA 조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부코프는 잠정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리바키나는 작년 11월 노박 조코비치의 전 코치인 고란 이바니셰비치를 새 코치로 영입했다. 그런데 부코프가 이바니셰비치 모르게 뒤에서 계속 코칭을 이어가고 있었단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호주 오픈에서는 부코프가 멜버른에 나타났지만 대회장 출입이 금지돼 연습 코트나 리바키나의 선수 박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식 코치 이바니셰비치는 리바키나가 대회에서 일찍 탈락한 후 결국 사임했다.
현재 리바키나는 상기네티와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우승 소감에서 드러나듯 부코프와의 관계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WTA의 징계 조치에도 비공식적으로 부코프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장외 논란과 별개로 경기력은 훌륭했다. 리바키나는 번개같은 출발로 연속 5게임을 따내며 6-1로 손쉽게 첫 세트를 가져갔다. 2세트에서는 샘소노바가 두 차례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5-3까지 역전했지만, 9게임에서 세트를 마무리하지 못했고 12게임에서 3번의 세트 포인트를 놓쳤다. 샘소노바는 타이브레이크에서 7-2로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3세트에서 리바키나가 진가를 발휘했다. 2게임과 6게임에서 브레이크를 성공시키며 6-1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특히 마지막 포인트는 세컨드 서브 에이스로 장식했다. 리바키나는 경기 전체에서 16개의 에이스를 기록하며 여전한 서브력을 과시했다.
이번 우승으로 리바키나는 통산 9번째 WTA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클레이 코트에서만 4번째 우승이다. 샘소노바와의 개인 대결에서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4연패를 당했지만, 작년 아부다비 준결승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연속 2승을 기록했다.
500점의 랭킹 포인트를 획득한 리바키나는 세계 랭킹 7위에서 11위로 상승할 예정이다. 프랑스 오픈에선 12번 시드로 출전해 204위 예선 통과자 훌리아 리에라(아르헨티나)와 1라운드에서 맞붙는다. 두 선수는 이전에 만난 적이 없다.
리바키나에게 스트라스부르는 특별한 곳이다. 2020년 이 대회에서 엘리나 스비톨리나를 상대로 패하며 준우승한 이후 5년 만의 재방문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신인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그랜드슬램 챔피언이 되어 돌아왔다.
한편 결승에서 패한 샘소노바는 19번 시드로 프랑스 오픈에 출전해 이집트의 마야르 셰리프와 1라운드에서 대결한다. 비록 우승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첫 클레이 코트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단 점에서 샘소노바에게도 의미 있는 대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