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에릭 텐하흐가 맨유에서 쫓겨난 지 7개월 만에 감독직에 복귀한다. 이번에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무대를 옮긴다.
바이어 레버쿠젠은 5월 26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에릭 텐하흐가 2025년 7월 1일부터 2027년 6월 30일까지 2년간 레버쿠젠의 감독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27일에는 레버쿠젠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샤비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생긴 공백을 55세 네덜란드 명장이 메우게 됐다. 텐하흐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바이에르 뮌헨 2군 감독을 맡으며 독일 축구 경험을 쌓은 바 있어 분데스리가가 완전히 낯선 무대는 아니다.
텐하흐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명암이 극명한 시간을 보냈다. 2022년 맨유 부임 후 첫 시즌인 2022-23시즌 카라바오컵을 따내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2023-24시즌에는 FA컵을 석권했지만 프리미어리그 8위로 마감했는데, 이는 1990년 이후 최악의 리그 순위였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가 탈락이라는 굴욕까지 당했다.
결국 지난 시즌 초반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프리미어리그 9경기만에 14위까지 추락하자 지난 10월 해임 통보를 받았고, 루벤 아모림이 후임으로 낙점되면서 텐하흐의 맨유 시절은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텐하흐의 이력서에는 여전히 빛나는 업적들이 가득하다. 아약스 시절 에레디비지 3연패를 달성했고, 2019년에는 아약스를 챔피언스리그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만들며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를 연달아 격파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텐하흐가 승계할 레버쿠젠은 알론소 매직으로 완전히 달라진 팀이다. 2023-24시즌 클럽 창단 120년 만에 첫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DFB포칼까지 석권하며 국내 더블을 완성했다.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아탈란타 BC에 패하며 트레블은 놓쳤지만, 462일간 이어진 무패 행진은 독일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알론소 후광이 사라진 올 시즌은 달랐다. 레버쿠젠은 바이에르 뮌헨에 무려 13점 차로 밀려 리그 2위에 그쳤고, 주요 타이틀 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더 큰 문제는 핵심 선수들의 대량 이탈 가능성이다. 제레미 프림퐁과 요나탄 타가 떠날 가능성이 높고, 플로리안 비르츠 역시 이적설에 휩싸여 있다.
그럼에도 텐하흐가 물려받을 전력은 만만치 않다. 알레한드로 그리말도, 그라니트 자카, 파트리크 시크, 피에로 잉카피에, 에드몽 탑소바,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등 검증된 선수들이 남아있어 여전히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텐하흐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 여름 대규모 선수 매각으로 천문학적 이적료 수입이 예상되는 상황. 지몬 롤페스 단장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즉전력감 선수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게 됐다. 뮌헨을 제외한 다른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정력이다.

롤페스 단장은 "우리는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경험 많은 감독을 영입했다"며 "텐하흐는 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국내 컵 우승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아약스와 함께 네덜란드 축구를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텐하흐는 "레버쿠젠은 독일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이자 유럽 최상위 클럽이기도 하다"며 "클럽은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고, 구단 경영진과의 대화에서도 큰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야심을 이어가기 위해 레버쿠젠에 왔다. 이 변화의 시기에 함께 무언가를 구축하고 야심찬 팀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력적인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알론소가 일궈낸 성과가 후임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2023-24시즌 무패 더블 달성은 레버쿠젠 같은 규모의 클럽이 이룰 수 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핵심 선수들의 대규모 이탈로 팀 컬러 자체가 바뀔 예정이어서, 텐하흐 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텐하흐의 첫 미션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이다. 레버쿠젠은 올 시즌 리그 2위로 자동 진출권을 확보했다. 맨유에서의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기회를 잡은 네덜란드 명장이 독일에서 어떤 축구를 펼쳐 보일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