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17년 만에 토트넘에 트로피를 안긴 감독 안제 포스테코글루가 제대로 긁혔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계속 묻는 언론을 향해 "아무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해냈는데 왜 내 미래를 물어보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니엘 레비 회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토트넘은 5월 26일(한국시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서 브라이튼에 1대 4로 참패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리그 17위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이는 클럽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악의 순위다. 하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초상집이 아닌 잔치집에 가까웠다. 지난 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대 0으로 꺾고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한 여운 때문이었다.
문제는 포스테코글루의 현실 인식이다. 이번 시즌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에서 22패를 당했는데, 이는 38경기 시즌 기준 클럽 최다 패배 기록이다. 11승 5무 22패로 승수보다 패배가 두 배나 많았고, 득실차는 -1에 그쳤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브렌트퍼드, 입스위치,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한 3승이 전부였다. 4월 6일 사우샘프턴전 승리 이후로는 7경기 연속 무승에 빠진 채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리그 22패라는 참혹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즌 평가에 대해 "뛰어났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17년 만에 트로피를 땄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확보했다. 시즌 초에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다면 거부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유로파리그 성과만을 부각시켰다.
이어진 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들은 현실과 괴리감을 보였다. "내가 가는 곳마다 한동안 성공하지 못했던 클럽에 성공을 가져다줬다"며 "내가 떠난 후에도 그 클럽들은 여전히 우승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심지어 "이것이 이 클럽이 정말로 도약해서 매년 영예를 놓고 경쟁하는 진정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이라며 토트넘의 미래까지 장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스텍의 '근자감'은 마지막 발언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아무도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일을 해냈다"며 "내 미래에 대해 앉아서 얘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클럽 역사상 최악의 리그 성적과 7경기 무승 행진으로 마감한 시즌에서 이런 발언이 설득력을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포스테코글루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도 거취 문제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례 없는 일을 해냈는데 내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게 정말 이상하다"며 "클럽에서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 미래에 대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며 "솔직히 말해서 왜 내가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17년 만에 클럽에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에게 연일 거취 불안설이 제기되는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이었다.

레비 회장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그는 공식 성명을 통해 "안제 감독과 선수들에게 감사한다"며 "이것은 하나의 트로피일 뿐이다. 클럽의 명확한 야망은 항상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공, 매년 최고 영예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의 미래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피했다.
구단이 고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편으론 17년 만의 유럽 대회 우승이라는 역사적 성취가 있고, 다른 한편으론 클럽 역사상 최악의 리그 성적이라는 현실이 있다. 특히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참가가 확정된 상황에서 포스테코글루의 스쿼드 운용 능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올 시즌처럼 유로파리그에 집중하느라 리그에서 주전들을 쉬게 하는 방식으로는 두 대회 동시 소화가 어렵다는 우려다.
팬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린다. 브라이튼전에서는 전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스테코글루의 이름을 연호했지만, 일부 팬들은 리그 최악의 성적을 감안할 때 적절한 이별 시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레비 회장은 24년간 13명의 감독을 경질했다. 포스테코글루 역시 이번 시즌 여러 차례 해임 위기를 맞았지만,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 17년 만의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을 자르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니면 처참한 리그 성적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포스테코글루는 이번주부터 휴가에 들어간다. 극한의 자신감으로 무장한 호주 감독의 미래는 여전히 레비 회장의 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