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젠 파월이 1루 심판으로 나서며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초의 여성 심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사진=MLB.com 중계화면)
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젠 파월이 1루 심판으로 나서며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초의 여성 심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사진=MLB.com 중계화면)

 

[스포츠춘추]

야구계에 또 하나의 역사가 쓰였다. 8월 10일(한국시간) 애틀랜타 트루이스트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젠 파월이 1루 심판으로 나서며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초의 여성 심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파월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보통 심판 소개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관중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130년 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라운드를 걸을 때 그 순간이 왔다는 걸 느꼈다." 파월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심판 조장인 구치오네와 서로 바라보며 '이거야!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때 정말 실감이 났다."

파월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친구의 권유로 소프트볼 심판을 시작한 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포수로 뛰었던 그는 3차례 올컨퍼런스에 선정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NCAA 소프트볼 심판으로 활동하던 중 메이저리그 심판 테드 배럿의 눈에 띄어 심판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배럿은 파월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러줬다. "이 길이 최소 10년은 걸릴 거라고 경고해줬다. 마이너리그에서 10년을 보내야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파월의 말이다.

파월은 2016년 루키급 걸프코스트리그에서 프로 심판 생활을 시작해 정확히 10년 만에 꿈의 무대에 섰다. 그동안 1200경기가 넘는 마이너리그 경기를 소화했다. 2023년에는 트리플A 챔피언십 사상 첫 여성 심판이 됐고, 2024년에는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스프링트레이닝에 여성 심판으로 참가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파월은 마치 오랫동안 빅리그 심판으로 일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3회 말린스의 재비어 에드워즈가 3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때렸을 때, 파월은 주저 없이 오른팔을 힘차게 내지르며 왼다리를 들어올리는 역동적인 아웃 판정을 내렸다. 확신에 찬 콜이었다.

"그녀는 정말 잘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더라." 브라이언 스니커 애틀랜타 감독의 평가다. 수십 년간 마이너리그 감독을 지낸 그는 파월의 여정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마이너리그를 통과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게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안다.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내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한 사람을 보면 기쁘다."

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젠 파월이 1루 심판으로 나서며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초의 여성 심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사진=MLB.com 중계화면)
마이애미 말린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젠 파월이 1루 심판으로 나서며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초의 여성 심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사진=MLB.com 중계화면)

이번 주말 파월은 더블헤더 2차전에서 3루 심판을, 11일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는 홈플레이트 심판을 맡는다. 그의 심판 모자는 경기 후 쿠퍼스타운 야구 명예의 전당으로 향할 예정이다.

NBA가 1997년, NFL이 2015년 여성 심판을 받아들인 것에 비하면 MLB는 늦은 감이 있다. 1980년대 팸 포스테마가 트리플A까지 올라갔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는 밟지 못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파월이 마침내 그 벽을 허물었다.

"나는 이 순간의 무게와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 파월의 말이다.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이것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대표자가 되겠다."

그라운드에 선 파월을 향해 팬들이 그의 이름을 외쳤다. 30명이 넘는 가족과 친구들이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NFL 최초 여성 심판 세라 토마스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격려 메시지를 보내왔다.

10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빛을 본 파월. 그의 다음 메이저리그 배정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그는 이미 도착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 지금은 파월이 최초지만, 앞으로 수많은 여성 심판이 그라운드에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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