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놀라운 일이다. 리빌딩을 하는 팀도 아니고, 선수층이 얇아서 어쩔 수 없이 신인을 쓰는 팀도 아니다. 12일 현재 리그 단독 선두를 달리는 강팀이자,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LG 트윈스 얘기다. 그런 팀에서 올해 입단한 신인 12명 중 5명이 벌써 1군 엔트리에 등록됐고, 그중 2명은 아예 주전급으로 자리를 잡았다.
KBO리그에서 LG만큼 선수층이 두터운 팀은 없다. 주전 선수가 빠져도 언제든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주전급 선수들로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팀이다.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이 부상으로 빠진 기간에 오히려 16승 6패로 더 좋은 승률을 올릴 정도였다. 그런데 갓 입단한 신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1군 기회를 받았고, 주전들을 위협하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더 놀라운 건 LG가 전년도 우승팀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10개 팀 중 가장 마지막인 10순위로 지명권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대어급 신인, 좋은 선수들은 앞 순서 팀들이 다 가져가고 남은 선수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도 어느 팀보다도 많은 신인 선수가 1군의 부름을 받았다. 1군 주전급 신인도 여럿 발굴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은 1라운드 10순위로 지명한 김영우다. 사실 김영우는 전체 6순위 지명도 가능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김영우 지명을 고민하던 키움이 막판 알 수 없는 이유로 충훈고 김서준을 선택하면서 LG 차례까지 내려왔다. LG로서는 예상치 못한 횡재였다.
고교 시절 최고 158km/h 강속구를 던진 김영우는 좋은 투구폼과 신체조건, 기본기,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좋아 국내는 물론 미국 구단도 관심을 보인 유망주였다. 제구가 불안하다는 평가도 있긴 했지만, LG는 김영우의 부상 이전 모습을 근거로 컨트롤 개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완전히 적중했다. 김영우는 입단과 함께 바로 1군 불펜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12일 현재 45경기 1승 2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2.41을 기록 중이다. 1위팀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신인 투수가, 그것도 좋은 불펜투수가 넘쳐나는 LG에서 이렇게 바로 1군 주전으로 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5라운드 외야수 박관우의 활약도 놀랍다. 고교 시절 키는 작아도 컨택 능력과 스피드, 수비력으로 호평을 받았던 박관우는 퓨처스리그에서 56경기 타율 0.293에 2홈런 10도루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7월 9일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주전 우익수 홍창기 부상으로 생긴 외야 빈틈을 파고든 박관우는 신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1군 17경기 타율 0.296에 2홈런 7타점 OPS 0.886을 기록 중이다. '관우'가 '염갈량' 염경엽 감독과 만나 상대 투수들과의 일기토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 관우는 술이 식기 전에 진지로 돌아왔지만, 박관우는 술이 다 식을 때까지 상대 투수를 괴롭힌다.

6라운드 박시원의 스토리도 드라마틱하다. 경남고 시절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예상보다 늦은 지명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화제가 됐던 선수. 올해 시범경기를 앞두고 최고 152km/h를 찍으며 화제가 됐고, 7월 1일 정식선수 전환과 함께 1군 콜업까지 됐다. 데뷔전에서 최고 154km/h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과시했다.
그 외에 7라운드 투수 김종운도 한 차례 올라와서 1군 경험을 쌓았다. 3라운드 이한림은 경기 출전은 못했지만 엔트리에 등록돼 1군을 경험했다. 지명권 트레이드로 뽑은 신인을 포함해 총 12명의 입단 선수 중 5명이 1군 엔트리에 올랐고, 4명이 실제 경기에 출전했다. 대단한 성과다.
스카우트 팀의 역량과 구단 육성 시스템, 그리고 현장의 뛰어난 판단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구단 베테랑 스카우트는 "LG는 백성진 스카우트 팀장을 비롯해 오랫동안 스카우트로 일한 베테랑들이 많다"고 했다. 오랜 경험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선수의 현재 모습은 물론 미래 잠재력까지 정확하게 내다보고, 10순위라는 불리한 여건에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구단의 육성 시스템도 한몫했다. 10개 구단 최고의 퓨처스 훈련 시설을 자랑하는 LG는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관리하고 빠른 성장을 유도했다. 염경엽 감독의 용병술도 돋보인다. 신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팀 전력에 보탬이 되도록 했고, 기존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과 함께 신인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했다.
LG의 체계적인 육성 전략은 김영우 활용만 봐도 잘 드러난다. 다른 팀이라면 당장 필승조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투수다. 하지만 LG는 신인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을 맡기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상황에 기용하면서 점진적으로 키우고 있다. 이런 섬세한 육성법이 신인들 성공의 비결이다.
퓨처스에서 준비 중인 선수들도 많다. 2라운드 추세현은 고교 시절 투타겸업 유망주에서 지난 6월 타자로 전향했다. 미래 대형 코너 내야수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전주고 우승의 주역이었던 포수 이한림도 미래 주전 포수로 기대받고 있다. 4라운드 이태훈도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퓨처스에서 4홈런을 날린 서영준도 기대를 모으는 선수다.
스카우트의 혜안, 구단의 시스템, 감독의 용병술이 모두 맞아떨어진 LG의 2025 신인 드래프트는 대박 예감이다. 당장의 성과도 놀랍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기대가 된다. 이 선수들이 몇 년 후 LG의 핵심으로 성장한다면, 이번 드래프트는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