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 플래그 지명을 발표하는 아담 실버 커미셔너(사진=NBA 방송화면)
쿠퍼 플래그 지명을 발표하는 아담 실버 커미셔너(사진=NBA 방송화면)

 

[스포츠춘추]

스포츠를 즐기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경기장 직관과 중계방송 시청이다. 그래야 구단도, 방송사도, 선수도 먹고 산다. 여기에 최근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한 시청이 추가됐다. 그런데 NBA 리그 수장이 직접 나서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애덤 실버 커미셔너가 12일(현지시간) "NBA는 매우 하이라이트 중심적인 스포츠"라며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소비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발단은 간단한 질문이었다. "NBA 시청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실버는 "우리 콘텐츠 중 상당량을 사람들이 사실상 무료로 소비한다"며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을 나열했다. 마치 비용이 부담스러우면 하이라이트나 보라는 식으로 들렸다. 770억 달러(약 1078조원)짜리 중계권 계약을 체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더욱 당황스럽다.

스포츠 매체 NBC 스포츠의 커트 헬린 기자는 "실버가 그 말을 주워담고 싶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린에 따르면 문제는 두 가지다. 팬들에게는 "돈 없으면 소셜미디어나 보라"는 차가운 메시지로 들렸고,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방송사들에게는 "굳이 우리 방송 안 봐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과 인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젊은 팬들이 하이라이트를 통해 NBA에 유입되는 것은 현실이다. 디 애슬레틱의 댄 샤노프 기자가 분석한 대로 NBA의 소셜미디어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 9000만 명, 틱톡 2500만 명의 팔로워는 분명 의미있는 숫자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샤노프는 "NBA 하이라이트는 젊은 팬들에게 다가가는 관문"이라고 옹호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관문과 목적지는 구별해야 한다. 하이라이트는 결국 풀게임 시청과 직관으로 이어지기 위한 미끼다. 그런데 실버는 마치 미끼가 메인 요리인 것처럼 말했다.

스포츠 블로그 바스툴 스포츠는 더 직설적이었다. "NBA를 '하이라이트 리그'라고 부르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는 팬들에게 소셜미디어에서 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라고 혹평했다. "예전에는 함께 앉아서 전체 경기를 봤는데, 지금은 30초 클립에만 의존해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핵심을 찌른다.

하이라이트의 함정은 맥락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덩크가 큰 점수차 무의미한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중요한 승부처에서 나온 것인지는 30초 영상으로는 알 수 없다. 농구의 진짜 재미는 4쿼터 48분 동안 펼쳐지는 흐름과 맥락에 있는데, 하이라이트는 그것을 모두 잘라낸다.

미국 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슈퍼스타 빅터 웸반야마(사진=웸반야마 SNS)
미국 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슈퍼스타 빅터 웸반야마(사진=웸반야마 SNS)

더 큰 문제는 비즈니스적 모순이다. NBC, 아마존, ESPN이 왜 NBA 중계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했을까. 라이브 중계의 독점적 가치 때문이다. 그런데 리그 수장이 직접 나서서 "우리는 하이라이트 중심 리그"라고 말했다. NBA 한 시즌을 제대로 보려면 수백 달러를 써야 하는데, 그 팬들에게 실버는 "소셜미디어면 충분하다"고 답한 셈이다.

실버가 젊은 세대의 달라진 소비 패턴을 인정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공식 입장으로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샤노프는 "실버의 발언이 '매우 하이라이트 중심적인 스포츠'에서 '하이라이트가 전부'로 왜곡됐다"며 변호했다. 하지만 그 '왜곡'도 실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샤노프도 "부적절한 화법이었나?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인정했다.

결국 핵심은 간단하다. 하이라이트가 팬 유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라이브 중계가 있어야 하이라이트도 나오고, 경기장에 사람이 와야 선수들도 뛸 수 있다. KBO 총재가 "프로야구는 움짤 중심 리그"라고 말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프로스포츠의 기본 생태계를 커미셔너 스스로 흔들어놓은 셈이다. 실버가 어떻게 자신의 말을 수습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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