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택과 구대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조경택과 구대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더게이트=대전]

26년 전 그날의 기억이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 되살아났다.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완성한 배터리 구대성과 조경택이 29일 2025 KBO 한국시리즈 3차전 시구자와 시포자로 마운드에 섰다. 주황색 물결로 가득 찬 관중석 앞에서 두 사람은 한화의 두 번째 우승을 간절히 기원했다.

구대성은 그해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등판해 1승 1패 3세이브를 기록하며 MVP를 차지했다. 조경택은 리그 정상급 투수진을 안정적으로 리드하며 리그 한 명 뿐인 우승 포수가 됐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마지막 승리의 순간은 지금도 한화 팬들의 가슴속에 생생하다.

1999년 한화는 정규시즌 72승 2무 58패(승률 0.554)로 양대리그 체제 매직리그 2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 진출 4개 팀 가운데 승률이 가장 낮았지만 가을야구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발휘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전체 승률 1위(0.598) 두산 베어스를 4대 0으로 완파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구대성은 1, 2, 3차전에 모두 등판해 1차전 승리와 2, 3차전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마운드를 굳게 지켰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한화는 롯데를 6대 3으로 제압했다. 정민철이 염종석과의 선발 대결에서 승리했고 구대성이 경기 후반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2차전에서도 4대 3 한 점차 승리를 거뒀다. 송진우가 승리투수, 구대성이 세이브를 기록했다. 3차전에서는 2대 3으로 패하며 구대성이 패전투수가 됐지만, 4차전에서 다시 2대 1로 승리하며 반격에 나섰다. 정민철이 승리투수, 구대성이 세이브를 기록했다.

5차전은 한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2대 3으로 끌려가던 9회초, 시리즈 내내 부진하던 댄 로마이어가 동점 3루타를 쳐냈다. 장종훈의 희생플라이 때 로마이어가 홈을 쇄도하며 역전 결승점을 만들어냈다. 4대 3 역전승이었다. 마운드를 지킨 구대성이 승리투수가 되며 한화의 창단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한화생명 볼파크 복도를 장식한 우승 당시 사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한화생명 볼파크 복도를 장식한 우승 당시 사진(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시구 행사 뒤 취재진과 만난 구대성은 "내가 선수 할 때보다 더 떨린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 장쑤성 프로팀에서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오늘 새 경기장을 처음 봤는데 너무 멋지고, 나도 이런 야구장에서 했다면 더 오래 야구하지 않았을까"라고 웃으며 말했다.

조경택 현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 코치는 "우승 당시 사진을 보고 구대성과 함께 우승 장면을 재현해볼까 했는데, 그렇게는 안 하고 시구 시포만 했다"고 말했다.

올 시즌 강팀으로 올라선 한화에 대해 구대성은 "지난해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올해는 투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잘 버텨줬고, 포스트시즌에 와서는 타자들이 좋아졌다. 투수가 조금만 더 좋아지면 LG와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조경택은 1999년 당시 한화를 회상하며 "그때도 선발진이 워낙 좋았다. 100승 이상 투수가 즐비했고 마무리는 구대성이었다"며 "올해는 코디 폰세, 라이언 와이스, 문동주 등 짱짱한 투수들이 있다. 둘을 견줘봤을 때 지금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고 본다"고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옆에 있는 구대성에 대해서는 "최고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경택은 "그때는 볼도 볼이지만 구대성 볼을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폼도 특이했고, 왼손타자가 많은 팀은 전혀 치지 못했다. 포수 입장에서 편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화에는 구대성의 현역 시절 신인투수였던 류현진이 뛰고 있다. 당시 갓 프로에 입단한 류현진은 구대성으로부터 전수받은 체인지업으로 리그 최고의 투수로 올라섰다. 구대성은 류현진에게 해준 조언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것은 얘기한 것 없고 하던 대로 해라"고 답했다.

같은 마무리투수로 시즌 막판부터 부진에 빠진 김서현을 향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구대성은 "부담감이 크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부담감 떨치는 건 본인이지만 조언한다면 잡으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집어넣어라. 삼진 안 맞으려 하는 것보다 무조건 집어넣다 보면 야수들이 해준다.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경택도 "한화 후배들이 긴장을 좀 많이 하는 것 같다. 아까도 더그아웃 가서 얘기했는데 즐겨라. 즐기면 우승반지가 손에 올 것이고 잡으려고 하면 도망갈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가을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취재진과 만난 조경택-구대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취재진과 만난 조경택-구대성(사진=더게이트 배지헌 기자)

한화는 1999년 기적의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지난해까지 25년간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01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2005년 플레이오프 진출, 2006년 한국시리즈 진출이 있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2007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마지막으로 2018년까지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2018년 플레이오프 탈락 이후에는 다시 암흑기가 찾아오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하위권을 맴돌았다.

올해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강력한 투수진과 끈끈한 팀워크를 앞세워 정규시즌 2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시즌 마지막 날까지 LG와 1위 경쟁을 벌였고,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3승 2패로 제압하며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잠실에서 열린 1, 2차전에서 패했지만 대전 홈으로 돌아온 한화는 반격을 노리고 있다.

구대성은 "후배들이 두 번째 우승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면 앞으로 세 번째 네 번째 우승을 갈 수가 있다"고 한화의 두 번째 우승을 기원했다. 2018년 한화가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올랐을 때도 시구자로 나섰던 그는 "중요 시리즈마다 저를 찾아준다는 것은 곧 저를 기억해 준다는 뜻이다. 이런 영광이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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