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와 고우석(사진=키움, 스포츠춘추)
이정후와 고우석(사진=키움, 스포츠춘추)

 

[스포츠춘추]

한국시리즈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11월 15일 오후, 깜짝 뉴스가 KBO로부터 전해졌다. KBO는 “지난 14일 MLB 사무국으로부터 LG 고우석, 키움 이정후에 대한 신분조회 요청을 받았다”면서 두 선수가 각각 LG, 키움 선수라고 회신했다고 밝혔다.

통상 신분조회는 국외 구단이?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이 있을 때 거치는 수순이다. KBO에 선수의 공식적인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로, 이후 시스템 등록까지 완료하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 가능한 신분을 갖추게 된다. 신분조회가 반드시 MLB 진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진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첫 단계라고 보면 된다. 

아마추어 선수의 경우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구단들이 임의로 신분조회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신분조회와 등록 절차를 거친 선수는 MLB 사무국이 배포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구단이 확인 가능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프로 선수의 경우, 주로 미국 진출 의사가 직간접적으로 확인된 선수가 신분조회 대상이 된다.

이정후야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이 기정사실인 선수인 만큼 신분조회는 크게 놀라울 게 없는 절차다. 미국 유력 매체에선 이정후를 코디 벨린저, 맷 채프먼 등 스타 FA(프리에이전트) 선수들과 나란히 거론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김하성이 받았던 4+1년 총 3,900만 달러를 뛰어넘어 5,000만 달러 안팎의 계약이 가능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고우석은 미국 현지에서 그렇게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아니었고, 선수 본인이 공개적으로 미국 진출 의지를 드러낸 적도 없었기에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내셔널리그 구단 소속 한 스카우트는 보도를 접한 뒤 기자에게 “고우석이 미국 진출 의사가 있는 게 맞느냐”라고 되물었다. 

한 가지 복선이 있긴 했다. 지난해 말 야구계에선 고우석이 구단에서 제안한 ‘8년 200억 원’ 비 FA 다년계약을 거절했다는 설이 큰 화제가 됐다.?알고보니 구단 고위 관계자가 지나가듯 한 말이 와전된 얘기였다. 고우석에게 다년계약 의사를 물어본 건 맞지만, 구체적 금액과 기간까지 제안하지는 않았다는 게 구단의 설명. 고우석은 얼마 안 남은 FA 자격과 국외진출 기회를 생각해서 구단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국외진출 기회’라는 대목이 중요하다. 고우석이 가슴 속에 깊이 숨겨둔 국외진출의 꿈이 해프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LG 마무리 고우석(사진=LG)
LG 마무리 고우석(사진=LG)

 

LG “고우석과 16일 만남 예정…선수 생각 들어본 뒤 판단”

고우석의 미국 진출은 전혀 허황된 꿈은 아니다. 한국을 찾는 ML 스카우트들은 고우석을 ‘잠재적 ML 진출 후보’ 중 하나로 분류해 꾸준히 관찰해 왔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소속 구단 한 스카우트는 “이정후, 안우진, 김혜성, 강백호, 정우영, 고우석 등을 중점적으로 관찰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고우석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다. 2021년 30세이브, 지난해 42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우뚝 섰다. 올해는 3승 8패 15세이브 평균자책 3.68로 주춤했지만 대신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LG 한국시리즈 우승 때 ‘헹가래 투수’의 영광을 누렸다. 통산 138세이브로 선동열(132세이브)을 넘은 고우석은 현재 페이스라면 내년 시즌엔 역대 최연소 150세이브를, 2025시즌엔 최연소 200세이브도 가능하다. 

패스트볼 구속은 이미 메이저리그급이다. 2017년 데뷔 이후 꾸준히 구속을 끌어올려 이제는 안우진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됐다. 지난해 평균구속 153.5km/h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 고우석은 올해 자잘한 부상 속에서도 평균 152.5km/h를 던졌다. 이는 올해 메이저리그 불펜투수 평균(평균 94.5마일, 152.08km/h) 이상이다. 주무기인 커터성 슬라이더 구속도 평균 145.2km/h로 ML 커터 평균(90마일, 144.84km/h)보다 빨랐다. 여기에 최근 구사율을 높인 커브도 올해 피안타율 0.195로 높은 구종가치를 자랑한다. 

내셔널리그 소속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고우석은 속구 구위만 보면 통할 가능성이 있다. 마무리는 몰라도 중간계투는 가능하다”면서 “이정후, 정우영과 함께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 후보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올해 고우석의 부진을 지켜본 뒤에도 여전히 “미국에 갈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미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라고 이전보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취재 결과 고우석 영입에 관심있는 MLB 구단은 존재한다. 다만 이정후처럼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진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AL 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올해 정도의 퍼포먼스로는 좋은 조건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정후처럼 구단에서 집중적으로 체크하거나 영입에 필요한 준비를 해온 것도 아니라서 실제 진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NL 구단 스카우트는 “내년 시즌 분발해서 FA 자격을 취득한 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진출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미리 미국 진출 의사를 밝혀 놓으면 시즌 중에 스카우트들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고, ML 진출에 좀 더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신분조회 뉴스를 통해 고우석이 미국 진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고우석은 포스팅을 통한 국외진출 자격을 갖추고 있다. LG 구단은 우선 선수 본인의 생각을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LG 관계자는 “16일(오늘) 정도에 고우석 측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고우석이 미국 진출 생각이 있는지 듣고 구단 쪽도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팅을 통한 ML 도전은 구단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과거 SSG 김광현의 사례처럼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명분은 있지만, 내년 시즌 전력을 구상하는 구단과 현장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4년 전 두산 김재환 사례처럼 선수 의사를 존중해 도전을 허가하고, 대신 ML 측의 조건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잔류하는 그림도 가능하다. 

과연 처남 이정후와 매제 고우석의 동반 MLB 진출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오늘 구단과의 면담 결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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