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장충고 문서준(사진=한화)
투수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장충고 문서준(사진=한화)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한국 고교야구 '공습'이 시작됐다. 이미 김성준(광주일고)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120만 달러(16억8000만원)에 계약해 미국행을 확정했고, 문서준(장충고)과 박준현(북일고) 등 투수 최대어들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높은 계약금을 확보할 상황이다.

여기에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최상위 지명이 유력한 선수들까지 대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신분조회와 등록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국내 구단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취재 결과 신재인(유신고), 안지원(부산고), 양우진(경기항공고), 오재원(유신고) 등 다수의 특급 유망주가 신분조회는 물론 메이저리그 사무국 등록까지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관심 있는 한국 선수들을 신분조회한 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등록해야 실제 계약이 가능하다. 등록 과정에서는 선수 본인의 동의와 서명이 필수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선 해당 선수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인지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국제 사인 기간은 매년 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운영된다.

유신고의 투타겸업 유망주 신재인(사진=한화)
유신고의 투타겸업 유망주 신재인(사진=한화)

신재인(유신고)은 2007년생 우투우타 내야수로 1학년 때부터 4번타자로 활약했다. 1학년 시즌 타율 0.474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여줬고, 중학교 시절 한 시즌 10홈런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좋다. 키 185cm의 좋은 신체조건에 어깨도 강해 투수로도 활용되는 투타 겸업 선수다. 올해 투수로 7경기 3승 무패에 평균자책 5.40을 기록했고, 타자로는 3루수-유격수를 오가며 23경기 타율 0.366에 4홈런 29타점 11도루를 기록했다.

양우진(경기항공고)은 2007년생 우완투수로 키 190cm, 98kg의 탄탄한 체격을 자랑한다. 작년 전국체전에서 153km/h를 던진 강속구 투수로, 구속뿐만 아니라 제구력도 수준급이다. 속구 외에 슬라이더와 커브 등을 던지는 정통파로 평가받으며, 올해 10경기 3승 1패 47.1이닝 55탈삼진에 평균자책 2.49를 기록했다.

안지원(부산고)은 타격 센스와 스피드가 뛰어난 우투우타 외야수다. 1학년 때 이미 황금사자기 MVP, 타격상, 최다안타, 타점상을 독식했고 2학년 시즌인 지난해도 황금사자기 홈런왕에 오르며 시즌 타율 0.421을 기록해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키 188cm, 85kg의 균형 잡힌 체격에 외야 세 포지션이 전부 가능하고, 어깨도 강해 투수로도 140km/h 이상을 던질 수 있다.

오재원(유신고)은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가 돋보이는 외야수다. 작년 2학년으로는 유일하게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인정받는 선수로, 177cm 76kg의 체격에서 나오는 스피드가 장점이다. 천부적인 컨택 감각과 역동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롤모델인 코빈 캐롤(애리조나)과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는 중견수로만 출전하며 23경기 타율 0.410에 1홈런 9타점 28도루를 기록했다.

특급 외야 유망주 오재원(사진=한화)
특급 외야 유망주 오재원(사진=한화)

이들은 모두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최상위 지명이 유력한 선수들이다. 만약 투수 1순위를 다투는 문서준과 박준현이 미국 진출을 택한다면 전체 1순위 경쟁을 벌일 수도 있는 유망주들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예년보다 넉넉한 국제 보너스 풀을 바탕으로 이들 유망주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예년보다 중남미와 타이완(대만) 유망주 풀이 다소 아쉬운 상황이라 더욱 한국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실제 김성준이 받은 120만 달러는 최근 몇 년간 한국 고교 유망주가 받은 계약금 중 최고 수준이다. 박준현은 150만 달러 이상, 최대 200만 달러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준현과 비슷한 급인 문서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심준석(덕수고)이 75만 달러, 2023년 장현석이 90만 달러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좋은 조건이다.

이미 2023년 새 단체교섭계약(CBA) 체결 이후 마이너리거 대우가 크게 개선된 상황.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급여가 기존 대비 2~3배 인상되고 의료 및 연금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과거보다 처우가 크게 개선됐다. 미국 대학과 연계해 유학 기회를 제공하는 구단도 여럿 있다. 한 에이전트는 “100만 달러 계약금의 가치가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했다. 계약금을 적게 받더라도 충분히 해 볼만한 도전이란 얘기다.

경기항공고의 강속구 에이스 양우진(사진=한화)
경기항공고의 강속구 에이스 양우진(사진=한화)

이런 상황은 KBO 구단들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1순위 유력 후보인 문서준, 박준현이 미국행을 택하는 데 이어 1라운드 상위 지명 대상 선수들까지 줄줄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신인드래프트 전략 전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1라운드 상위 유망주가 빠져나가면 우리가 찍어뒀던 선수를 앞의 팀이 데려가게 되지 않겠나.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등록이 곧 실제 계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한국 유망주에 대한 신분조회는 매년 상당수 이뤄진다. 최근에는 매년 10명 이상이 무더기로 신분조회를 받고 있다. 등록까지 이뤄진 선수 중에도 최종 계약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1학년 때부터 고교야구를 평정한 안지원(사진=한화)
1학년 때부터 고교야구를 평정한 안지원(사진=한화)

실제로 올해 신분조회 및 등록이 이뤄진 선수 대부분은 국내 프로야구 지명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거론한 선수 중 하나는 실제 미국 구단의 제안도 받았지만 부모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메이저리그 꿈은 있지만 먼저 KBO리그를 거쳐서 포스팅을 통해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1라운드 지명시 예상 계약금이 미국에서 제안받은 계약금과 큰 차이가 없는 것도 판단의 근거가 됐을 법하다. 

다만 계약금이 남아도는 구단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경우 마음을 바꾸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매년 실제 미국에 가는 선수는 1~2명에 그쳤는데 올해는 그 이상의 선수가 대거 진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며 “드래프트 참가 신청 마감일인 28일까지 상황을 지켜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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